느긋하게 혼자 신전을 거닐다.
오래도록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한 요즘, 이상하게도 그리스 아테네 생각이 많이 난다. 처음 그리스로 떠났던 해가 2013년 7월이었는데 당시 많은 이들이 아테네는 1박 2일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아테네는 내가 공부하고 보고 느끼고 싶은 것이 정말 풍부한 장소였고, 1박 2일로는 턱 없이 부족한 도시였다. 그래서일까. 다시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 떠나고 싶은 여행지 Top.3 안에는 늘 '그리스-아테네'가 있다.
문학과 미술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했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리면서 신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책에서만 보던 신전들을 직접 마주하며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그런데 당시 난 참 바보 같은 짓을 했었다. 그리스와 터키 여행을 준비하던 나는 IN-OUT 도시를 그냥 따로 정하면 됐는데. 예를 들어서 터키 IN-그리스 OUT, 또는 그리스 IN-터키 OUT
대한항공 이스탄불 직항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이스탄불 IN-OUT을 한 것이다. 결국 이스탄불에서 1박 하고 바로 저가항공을 타고 그리스 아테네로 향해야 했다. 뭐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2013년 7월 터키 기사를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이스탄불 탁심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한창이었으니.
당시 나는 하필 그 시위의 중심지인 탁심 호텔을 숙박지로 예약해 놓았고 도착한 저녁, 장총 든 경찰의 진압에 의해 다른 곳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결국 숙박비도 날리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하...
어찌 되었든지 그렇게 입성한 그리스 아테네였지만 아테네는 정말 내게 '바로 이곳이야!'라는 기대함을 안겨줬다. 그 이후였을까?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장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장소 궁합 같은 것 말이다. 떠나기 전 많은 여행자들이 그리스보다 터키를 예찬하였기에 그리스보다 터키 일정을 더 길게 잡았던 나. 하지만 그리스에서 터키로 넘어가던 날 깨달음을 얻었으니. 난 터키보다는 그리스!!!
'아테네'는 관광지가 몰려 있어서 짧은 시간 도보여행이 가능한 도시인 건 분명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래, 1박 2일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아테네'는 최소 한 달은 머물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빌딩 하나 없는 소박한 도시, 걸어서 도시를 탐색할 수 있는 아담한 장소이지만 그 단정함과 복잡하지 않음이 정말 좋았다.
오랜만에 사진을 정리하면서 신전의 이름을 잊어버려서 애를 먹었다. 그렇게 찾고 찾아서 신전의 이름들을 정리하였다. 만약, 나의 기억이 틀렸다면 언제든지 댓글로 알려주길 바란다. ㅎㅎ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면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당시 아이폰 4를 지니고 다녔기에 사진의 화질은 지금 보면 형편없다. 여행을 추억할 때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건 역시 카메라의 성능이다. 처음 유럽여행을 떠났던 시절에는 스마트폰이라는 것조차 없었다. 그래서 화질이 형편없는 니콘 디지털카메라를 하나 들고 다녔는데 2013년에도 그때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사진을 보며 느낀다. 지금도 그리 좋은 카메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조금 괜찮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는데 해외여행을 떠날 수 없으니 이것은 무슨 운명일까. ㅠㅠ
누군가 아테네를 여행하게 된다면 오래 머물라고 권유해주고 싶다. 물론, 그건 본인의 선택이고 공부를 해도 흥미가 없다면 잠시 스쳐 지나가도 될 것이다. 하지만 혹여나 나와 같은 분이 있다면 조금 더 천천히 ‘숨’을쉬며 아테네 도시 구석구석을 걸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손님이 별로 없는 한 여름 낮, 한산한 호텔 방에 누워 여직원의 통화 소리를 엿듣고, 잠깐 나가서 '피레아스 항구' 주변을 거닐어도 좋을 것이다. 어느덧 항구에서 페리를 타고 산토리니로 떠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면서 일몰을 감상해도 괜찮을 것이다. 낡은 서점에서 오래된 그리스 시집을 하나 사 와서 펼쳐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은 ‘찰나’가 되었지만 아테네는 여전히 아테네로 머물러 있을 것이기에 아쉽지는 않다. 항구의 냄새, 그리고 항구 주변의 소리들.
페리를 탈 때 만났던 한국인 학생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 그리스 2편에서는 '산토리니'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