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페리를 타고 '산토리니'로!
최근 갑자기 여행 글을 정리하기 시작한 건 코로나19 때문이다. 그 바이러스로 인하여 오래도록 여행을 떠나지 못했고 또 최근에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후 어마 무시한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백신 부작용으로 하늘나라에 갈지도 모르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보니 소중한 시간들을 기록으로나마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남는 건
지난 '시간'과 '사진'과 '글'들 뿐이겠지.
2013년 여름, 퇴직을 하고 근 한 달 여행 계획을 세우며 나는 '산토리니'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이유는 어린 시절 TV CF에서 마주했던 산토리니의 파란 지붕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그 강렬한 잔상 때문인지 '산토리니'는 꼭 여름에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당시에는 산토리니로 가는 직항이 없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여행책자를 꺼내 다시 살펴보니 '아테네'조차 직항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그래서 이스탄불 IN-OUT 직항을 탔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듯도 하다.)
일단 산토리니로 들어가는 가장 흔한 방법은 아테네 '피레아스 항구'에서 페리를 타는 것이다.
그 당시 미래를 생각지 않던 나는 일반석도 아닌 침실 1등석을!! 그것도 초고속 페리!!로 예약했었다. 지금은 결혼 후 살림을 하며 짠순이 아줌마가 되었는데 말이다.ㅠㅠ
'아테네' → '산토리니'로 가는 페리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침실이 있는 1등석 (이곳에는 샤워실도 있다.)
2. 일반석 (이 경우에는 로비 의자에 누워서 잠을 청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속도'로 구분할 수 있는데
1. 일반 페리
2. 초고속 페리
물론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내 기억 속 '산토리니로 가는 페리'는 이렇게 구분된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페리를 예약할 때 그리스 인터넷 사이트에서 예약을 진행했는데 <영문 이름, 생년월일, 카드 번호 등>을 적다가 그만 영문 이름인가를 잘못 적는 바람에 2-3만 원 수수료를 지불하고 예약자 정보를 수정해야 했다. 예약자 정보 수정에도 돈이 든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돈이 아까웠다.ㅠㅠ 몇 천원도 아닌, 몇만 원.. 흑흑.
아! 그리고 중요한 Tip이 하나 있다.
산토리니 항구에서 내리면 바로 Fira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 간격이 길기 때문에 만약 버스를 놓치면 2시간이나 항구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것 또한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ㅎㅎ) 중요한 건 항구 주변에 식당 몇 군데밖에 없다는 점... OTL
한 가지 에피소드를 더 말하자면, 그때 왜 하필!!!
페리에서 내리자마자 매직이 시작되는 바람에 다급히 항구 근처 식당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는 이미 Fira로 향하는 버스가 떠나고 없었으니 ㅠㅠ 항구 주변에 홀로 남겨진 나는 식당 아주머니와 세월아~ 네월아~ 수다를 떨어야했다. 2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산토리니에서 코스 섬으로 떠나던 그날.. 또 한 번의 기다림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나누기로 하자.
anyway!!
산토리니에서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장소는 바로, '피라 Fira'!이다.
'피라 Fira'는 한 마디로 산토리니 교통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데 서울로 치면 고속터미널 같은 곳이다. 매일 이곳으로 들어온 버스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각자의 목적지인 해변으로 출발한다.
산토리니로 떠나기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먼 북소리'를 읽었다. 하루키가 3년 동안 그리스, 로마 등 유럽 곳곳에 오래 머물면서 쓴 책인데 그리스 관련 글들이 있어서 읽게 되었다. 그리스와 산토리니는 정말이지 고요히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좋은 장소이다. 관광객들이 많다고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관광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그곳에는 있다.
미코노스
이 한 달 반이라는 기간은 나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하고,
이 철 지난 에게 해의 섬에서 나는 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잠시 동안 거기에 대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진짜로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내 머리에는 군데군데 구슬 같은 공백이 생겨 있다.
-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미> -
어찌 보면 여행은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공백'을 발견하는 위해 찾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그 '공백'은 나 이외에 다른 풍경을, 다른 사람을, 다른 이야기를 조심스레 담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준다.
되돌아보면 그리스에서의 시간이 그랬다.
산토리니 섬 거리 곳곳에는 빈 그림자와 그늘이 가득했는데 그곳에 있으면 혼자여도 외롭지 않았고 한여름이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내일에 대한 염려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는 '여백', 그 자체 산토리니.
한적한 골목을 오르다가 석양을 바라보고, 나귀를 끌고 가는 현지인과 잠시 인사 나누던 시간들.
한 번은 일몰을 보러 산토리니의 언덕을 오르다가 나귀를 끌고 가는 현지인 아저씨와 마주쳤다.
그는 본인의 집 대문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그때 석양을 바라보던 아저씨의 촉촉한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슬며시 미소를 띠며 대문 안으로 들어가던 뒷모습도.
산토리니는 연인이 또는 신혼부부가 여행하기 좋은 장소이지만 혼자 여행해도 결코 외롭지 않은 장소이다. 만약, 다시 여행한다면 산토리니 주변의 다른 섬들도 오래도록 둘러보고 싶다.
그때도 나귀를 만날 수 있을까.
얼마나 고요하고 평온할까. 그 시간들이.
물론 터키도 좋았지만 (지인의 추천으로 터키 일정을 훨씬 오래 잡았지만) 다시 간다면 터키보다는 그리스에 더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산토리니에 머물면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다. 고요하고 고요하고 고요하고 평온하였다는 것 외에는 사실 별 개 없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런 시절이 다시 찾아올까 싶기도 하다.
렌트를 했다가 차 사고가 나서 엄청난 금액을 변상했다는 한국인 남학생들도 생각난다.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해맑게 웃는 아이들이 신기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산토리니였기 때문에 가능한 듯도 싶다.
지금 가면 더 멋진 사진을 담아올 수 있을 텐데. 그때의 사진을 보며 늘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였기에 그대로 소중한 것이리라.
산토리니에서는 매일 같은 언덕을 반복해서 올랐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매 순간 다른 바다와 다른 석양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서점에 들러 책을 들춰보면서 멀리 떠나온 시간을 모두 잊었던 그때,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여백이 가득했던 시절, 텅 비어서 별다른 일조차 생기지 않았던 날들. 조금은 심심하고 정적이었던 그때의 시간이 요즘은 유독 그립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