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장례식 소식을 전해 듣다.
생각해 보니 잊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입원 중에 전해 들은 큰외삼촌의 부고 소식이었다. 큰외삼촌은 10여 년 전 TV에서나 일어날법한 일을 당했다. 당시 큰외삼촌은 회사에서 물걸레로 바닥 청소를 하다가 그만 젖은 바닥에 미끄러지는 부상을 당하였다. 그런데 하필 넘어지면서 신경이 지나는 목 부분의 척추가 골절되어서 목 아래 부분으로는 전신마비가 되었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음식조차 삼키지 못하셨다. 처음에는 가족과 친척 모두 언젠가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꿈이 아니었고 큰외삼촌은 그 지옥의 시간을 거의 10년 가까이 보내야 했다. 다행히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서 그 오랜 기간 개인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었지만 외삼촌이 겪었을 고통의 시간은 그 누구도 감히 가늠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일까. 외가 식구들은 내심 이렇게 식물인간처럼 고통스럽게 지내느니 이제 평안히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삼촌에게도 더 나은 일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 같다. 엄마가 척추골절로 입원했을 때 이모들은 내게 엄마의 연명치료 여부에 대하여 묻곤 했다. 그 당시에는 이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화가 나서 당분간 친척들과는 연락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는 잘 지내고 있지만.. (지금 회상해 보아도 척추골절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해야 했는지 잘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어쨌든 이모들은 엄마를 보면서 큰외삼촌처럼 엄마와 간병을 하는 가족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될까 봐 걱정한 것일 수도 있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이 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큰외삼촌이 너무나 오래도록 병상에 누워 계시기도 했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곳에서 엄마 일에 몰두하느라 큰외삼촌의 죽음을 슬퍼할 마음적 여유가 없었다. 엄마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오래도록 누워서 지내다 보니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할 힘을 잃었고 이 지긋지긋한 병상생활을 끝마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던 듯하다.
그렇게 나는 큰외삼촌의 장례식에 가보지 못하였고 엄마와 병원에서 큰외삼촌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지금 되돌아보면 짧은 2주 동안 나름 많은 사건이 있었구나 싶다. 어쨌든 슬픈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다음 날은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엄마의 퇴원 날이었기에. 나는 그 순간에는 그저 내일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퇴원 D-day 1
우리 모녀는 엄마의 마지막 치료실인 병원 내 이비인후과로 향했다. 이석증 치료는 당일 그 자리에서 이루어졌고 치료비용은 비급여 적용으로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20만 원 중 후반?이었다. 담당의는 모니터를 보면서 제자리를 이탈한 이석의 위치를 찾은 후 고개의 위치를 바꿔가며 반고리관에 들어간 이석을 원래의 위치(전정 기관)로 이동사켰다. 맙소사! 이렇게 빨리 끝이 나다니!!!
마치 마법을 부리듯이 그렇게 순식간에 치료를 끝마친 후 엄마는 더 이상 어지럼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허무할 정도로 치료는 간단명료했다.) 이제 남은 건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고 얼른 집으로 돌아오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가족이 해줄 수 없었고 온전히 엄마의 의지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