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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필 Jul 04. 2022

'마침내'에도 끝맺지 못할, "헤어질 결심"

#2 박찬욱, 헤어질 결심(2022)

※ 이 글을 포함한 모든 글은 알게 모르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의 수사

이토록 아름다운 수사가 있을까. <헤어질 결심>의 수사()의 과정은 마치 사랑의 과정과 같다.

수사의 과정은 상황에 따라 의심하고 믿고 확신하지만 마침내 다시 의심하는, 끊임없는 질문과 판단의 과정이다. 사랑 역시 이와 같다.


해준(박해일)은 서래(탕웨이)를 의심하고 캐묻고 훔쳐보지만, 그녀와의 미묘한 감정 교류에 흔들리고 그녀를 믿게 된다. 하지만 이내 그녀에게 이용당했다고 판단하고 다시 의심하지, 감정 앞에 무력하게 무너진다.

결국 경찰로서 또 남편으로서자아가 붕괴하며,  

사랑을 끝냄과 동시에 마침내 사건을 덮는다.

사랑은 관찰과 기록이다. 해준은 서래의 집 앞에서 서래를 지켜보며 서래의 행동 하나하나를 기록(녹음)한다. 이는 피의자를 조사한다기보다는 흡사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기록하는 모습이다. 그녀의 일상에 젖어들며 해준은 서래에게 점차 스며든다.[서래의 인사를 따라 하고 서래의 집에 있던 위스키와 같은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 등은 해준이 서래에게 동화()됨을 보여준다]


 사랑의 모습은 서래가 잠복 중 차에서 잠들어 있는 해준을 발견하게 되는 장면에서 양방향을 이룬다. 해준의 모습을 찍고, 해준의 심장(마음)을 가지고 싶다 하는 서래가 어찌 해준에게 단지 모종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서 접근했다고 하겠는가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는 최은영의 소설 <쇼코의 미소>의 한 구절처럼,

"어떤 수사는 마치 사랑 같다."


수사와 사랑의 가장 주목할 만한 공통점은 둘 다 마침내 결()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수사는 미결로든 해결로든 종결되게 된다. 사랑도 그러하다. 완벽해 보였던 해준 부부의 관계가 그 기저에는 불륜을 깔고 있었다는 점은, 완결되지 않는(말하자면 영원한) 사랑이 부존재함을 방증한다.



미결의 사랑

산에는 결말이 있다. 아무리 높은 산도 정상에 오르는 순간에는 완결된다. 서래의 살인도 해준의 산골(散骨, 뼈를 뿌림)도 모두 산의 정상에서 이루어진다. 산은 수사처럼 또 사랑처럼 "마침내" 무엇인가가 끝나는 장소다.


하지만 바다는 다르다. 바다에는 끝이 없다. 그저 차오르고 빠져나간다.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고 말하는 서래는, 엄마의 유골을 품고 살만큼, 끝맺음을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서래가 바다를 좋아하는 것은, '마침내' 끝나버리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서래의 자살은 무엇을 의미할까.

해준이 서래를 떠나가던 날, 해준은 자신이 붕괴되는 것 같다 고백한다. 경찰로서의 자부심을 내려놔 품위마저 잃어버린 해준이 서래를 떠난 후, "붕괴"의 단어 뜻을 곱씹어 본 서래는 해준이 무너지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이포'로 끝내 다시 돌아오는 서래는 해준과의 사랑을 영원히 끝맺을 수도 없다.


서래는 해준의 방에 박제된 미결의 사건들처럼 지워지지 않는 사랑으로 남고자 한다. 해준의 붕괴와 사랑의 결(結)을 동시에 막기 위해 내린 서래의 결론은, 

다분히 비이성적으로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가슴을 친다.


정서의 파도

박찬욱 감독이 영화 시나리오 작업 전 정서경 작가에게 <밀회>(데이비드 린 연출, 1945)를 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밀회는 어떤 작품인가. 정서와 감정의 흐름만으로 러닝타임을 가득 채우는 마법 같은 영화다.


<헤어질 결심>도 정서로 영화를 가득 채운다. 물론 이 영화가 '멜로 100, 수사물 100으로 이루어졌다' 박찬욱 감독의  자평()처럼, 이 영화에는 다른 재미 요소도 적지 않다. 수사물로스릴러로도  꽤나 흥미롭다.

또한 미장센과 영화미술 등의 기술적인 부분들은 전작들의 성취에 못지않고,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는 편집은 시각적 즐거움의 제공하고 시선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하지만 어떤 기교도 장엄한 감정의 파고 앞에 무력하게 영화의 중심을 내어준다'

박해일과 탕웨이의 얼굴은 감정을 충실하게 실어 나른다. 박해일의 불안한 얼굴 시종 아슬한 그의 감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천천히 붕괴해 가는 그의 모습에 동화케 한다. 탕웨이의 얼굴은 어떤가. "꼿꼿함" 사이로 비치는 서래의 요동치는 감정은 부지불식 간에 관객의 마음에 가닿아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라고  묻는 그녀의 질문에 답할 수 없게 한다.

두 배우의 뛰어난 연기는 마치 안개처럼 스며들어 감정으로 스크린을 적셔간다.


수사의 과정(말하자면 사랑의 과정)에서 켜켜이 쌓아 올린 서래와 해준의 감정의 무게는, 침잠하는 서래를 찾아 울부짖는 해준을 향해 밀려들어 오는 파도로 가시화된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지만 점점 차오르는 바다처럼,

의심과 믿음이 반복되지만 점점 차오르는 감정을

우리는 어쩔 것인가.


'나는 이만큼의 감정이 스크린을 통해 쏟아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단연코 올해 가장 가슴 뛰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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