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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필 Jul 29. 2022

느리게 자살하는 중입니다

그저 버티는 삶, 그리고 글쓰기

버티는 인생만 살다 보면, 자신이 뭐가 하고 싶어 이곳에 있는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아무튼 살아보자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때로 이렇게 사는 것은 느린 자살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 - 그녀에 대하여 中(민음사)>




버틴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매일 퇴근길 지하철에서 피곤에 지쳐 지하철에 몸을 싣는 수많은 이들을 본다. 하루의 무게에 짓눌려 핸드폰만 멀거니 응시하는 사람들. 물론 나도 그중 하나다. 하루를 버티고 퇴근길에 지하철에 앉아, 나와 같이 하루를 버텨낸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한 켠에 작은 위안을 는다. 그들과 나, 우리들에 대한 동정일까.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소속감과, 알량하지만 매달 꼬박꼬박은 들어와 주는 월급이 주는 안도감일까.


버티는 삶이 진정으로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육체적 피로나 권태로움에서 오는 지루함은 아니다. 진정으로 괴로운 것은 사라져 가는 나를 지켜보는 것이다. 목적 없는 하루를 버텨내던 중에 문득, 여유 시간이 생기면 갑자기 텅 빈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무던히 그리고 부단히 달려오던 걸음을 멈추고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세상 속의 나의 존재는 작아져 있고 오래 걸어온 길에 내 발자국은 남아있지 않다.

잠도 줄이고 힘들어도 참아 내고, 남들이 하는 만큼은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아니 분명 남들보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나는 텅 비어 있을까. 왜 나는 끊임없이 소각되고 있을까. 왜 나는 나의 인생을 천천히 죽이고 있을까. 목적없이 그저 삶을 버텨내는 나는, 어쩌면 느리게 자살하고 있다.


날 사랑해 난 아직도 사랑받을 만해 이제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데
이렇게 떠밀리듯 가면 언젠가 나이가 멈추는 날 서두르듯 마지막 말할까 봐
이것저것 뒤범벅인 된 채로 사랑해 용서해 내가 잘못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널 사랑해 날 용서해 지금부터
내 잘못이야 날 용서해 지금부터
날 사랑해 지쳐가는 날 사랑해
<윤종신 - 나이 中 (2011)>


나는 조금씩이지만 아주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언젠가 나이가 멈추는 날 서두르며 말하지 않도록 나는 글을 쓴다.

끝임 없이 나를 소비시키는 하루에 대한 저항으로 나를 한 줄, 한 구절을 남긴다. 삶은 사라지지만 기록은 쌓인다. 그래서 나는 쓴다. 이제서야 사라져 가는 나의 존재를 조금은 알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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