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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필 Aug 15. 2022

뭘 해도 망해버릴 수 있다면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소고


어렸던 내가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했을 때,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의 사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공무원 그거 왜 하려고 해? 안정적이어서?" 당시 공무원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나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못했고 사장님은 다시 한번 나에게 물었다.

"진짜 그게 안정적이라고 생각해? 안정적인 게 뭔데?"




사장님 말씀의 요지는 이렇다. 공무원은 어차피 박봉이다. 적은 월급이 꾸준히 들어오는 것이 무슨 안정인가. 진짜 안정적인 것 때문에 직업을 선택하는 거라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골라라. 조금씩 오래 버는 것보다 벌 수 있을 때 많이 버는 게 더 안정적이다. 불규칙하고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지라도 말이다. 적은 돈으로 연명하는 건 그저 겨우 버텨내는 것뿐이지 안정적인 게 아니다. "작은 불행도 견뎌내지 못하는 적은 월급 따위는 너에게 안정을 줄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동경이 있다. 일부 직업이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믿음은 크게 두 가지. 첫째, 크게 나아지지는 않더라도 크게 나빠지지도 않을 거라는 경제적 믿음이다. 외부의 여건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크진 않지만 꾸준하게 수입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꾸준한 수입이 과연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줄까?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를 따라가기도 버거운, 꾸준하기만 한 수입은 무의미하다. 크게 나빠지는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둘째, 고용 안전. 우리에겐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면 갑자기 잘리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안정적인 직업과 불안정한 직업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불안정한 직업은 실패할 확률이 높고, 반대로 안정적인 직업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실패를 회피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잘리는 것만이 실패가 아니다.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다양한 이유로 직업 안에서 무너질 수 있다. 안정적인 직업에도 실패를 할 위험은 상존한다. 


안정적인 일에도 분명히, 공무원 시험을 보거나 교사가 되거나 아니면 남들이  가는 편안하고 순탄한 길을 간다고 해도, 거기에도 분명히 실패는 있을 수 있다는 거야. 여기(불안정한 일)에도 물론 실패가 있을 수 있어. 그럼 어느 실패가 더 치명적인가를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거지. 너희가 그런 얘기는 안 해봤잖아. 어느 성공이 더 달콤할까라는 생각은 해봤지만, 어디에서든 실패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잖아. - 이지영 강사의 수업 中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만사형통의 정답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고용이 안정되거나 경제적 자유를 보장받지는 못한다. 하지만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는 천국은 없다. 확실한 안정이라는 것이 애초에 환상이라면 조금은 무모해져 보는 것이 지금의 우리에겐 지극히 합당한 선택이 아닐까. 어차피 안전히 기댈 곳이 없다면, 두려워도 좋아하는 것에 한 번은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





짐 캐리의 졸업 축연 중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My father could have been a great comedian, but he didn't believe that was possible for him. And so he made a conservative choice. Instead, he got a safe job as an accountant. And when i was 12 years old, he was let go from that safe job. And our family had to do whatever we could to survive. I leanded many great lessons from my father. Not the least of which was that you can fail at what you don't want, so you might as well take a chance on doing what you love.

JIM CARREY, 2014 MUM graduation speech
제 아버지는 멋진 코미디언이 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믿지 못했어요. 그래서 안정적인 결정을 내렸죠. 코미디언이 되는 대신 안정적인 직업인 회계사가 되기로요. 그리고 제가 12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그 안정적인 직업에서 잘렸습니다. 우리 가족은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죠. 저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당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당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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