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켄 로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어두운 화면 속 심기가 불편한 남자의 목소리와 친절한 듯하지만 적당히 사무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남자가 하고 싶은 말들은 여자에게는 필요가 없는 말뿐이다. 심장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어 질병수당을 받아야 한다는 노인의 외침은 철저히 규정만을 강조하는 여자의 질의응답 과정 속에 뭉개진다. 개인들은 거대한 복지 시스템 상에서 화면의 점이나 숫자로 존재할 뿐이고 '나'라는 주체적인 개인은 세상에서 점점 사라져 간다.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질병수당을 신청한다. 하지만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하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불구, 질병수당 심사에서 이유도 모른 채 탈락하게 된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어떠한 지원도 받기 힘들게 된 다니엘 블레이크는 항의를 이어가던 와중에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 놓인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를 만나게 된다. 다니엘과 케이티는 서로를 도우며 처지를 개선해보려 하지만 상황은 계속 악화되기만 한다.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위협을 받게 되자 다니엘은 사랑하는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가구마저 처분하고 케이티는 성매매에 발을 들이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것도 보장받지 못하는 삶
사실주의의 거장인 켄 로치의 작품답게 영화는 영국 사회의 잘못된 복지 제도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음악도 배제한 채 일관된 어조로 사회 소외계층의 어려움을 카메라에 완연히 담아낸다. 너무나 꼬장꼬장한 다니엘 블레이크의 태도나 우리가 실제로 접해보지 못해 낯선 소외계층의 모습에도,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관객을 영화 안으로 차분히 끌어들인다. 지병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는 노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경제적 위기에 몰린 편모 가정, 땅에 떨어진 노동의 가치로 인해 일을 하지 않고 불법적인 일에 빠지는 흑인 청년 등 다양한 빈곤층의 모습을 보여준다. 감독의 따뜻하지만 적확한 시선 아래, 관객들은 그들에게 공감하며 소외된 그들의 삶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시종 악화되는 소외계층의 처치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답답한 마음만이 차오르게 한다. 경제적 위기에 대한 일말의 개선은 고사하고, 오히려 갯벌 같은 감정의 구덩이들이 도처에 놓여있어 영화를 보는 내내 슬픔 속으로 발이 푹푹 빠지게 한다. 특히 케이티의 가정은 인간 생활에 기본적이라 여겨지는 '의식주'조차 보장받지 못하는데. 케이티는 운동화 밑창이 떨어져 놀림받는 딸에게 신발 하나 맘 편히 사주지 못하고, 먹을 것이 모자라 과일 하나로 하루를 버틴다. 또한 어렵게 임대받은 집은 낡고 군데군데가 망가져 있고, 전기요금 등 공과금을 내지 못해 집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오히려 케이티를 재정적으로 옭아맨다. 게다가 케이티는 생계를 위해 자신의 성까지 팔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케이티가 무료 식료품 지원을 받다가 배고픔을 참지 못해 통조림을 허겁지겁 먹는 장면이나 성매매업소로 찾아온 다니엘과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 등은 줄곧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던 관객의 마음마저도 여실히 흔든다.
개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에서 가난한 삶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사회 시스템 안에서 자행되는 '개인의 소멸'이다. 영화의 제목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나와 다니엘 블레이크는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분리된다. 경제적 궁핍 속 금전적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나'(실존적 개인)는 점점 사라지고 타인에 의해 명명되는 '다니엘 블레이크'(명목상의 개인)로 대체된다. 이는 다니엘이 수당 관련 상담을 받는 모습에서 가시화되는데, 자신의 처지와 심장병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 하는 '나'의 말은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되어 묵살되고, 시스템은 단지 '다니엘 블레이크'가 자신들의 기준 하에 지원 가능한 점수에 해당되는지를 확인할 뿐이다.
케이티(실존적 개인)는 딜런과 데이지, 두 아이의 엄마이고 다니엘 블레이크 등 이웃들과 조력의 관계다. 또한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공부를 이어가려 하는 하나의 '존재'이지만, 생활고 끝에 성매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단지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한 명의 '여자'라는 도구적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사회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상황, 개인적인 서사, 개인적인 생각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불우한 개인은 무정한 사회 속에서 결국 화면 속의 데이터나 숫자로 치환되고 '나'다움은 거대한 파도가 지나간 듯 흔적 없이 지워진다.
구직 수당 상담을 기다리던 다니엘 블레이크의 이름이 호명되고 대기하고 있던 자리를 떠나자, 다른 남자가 자연스레 그 자리를 채운다. 이 사회에서 가난한 노인들은 언제 사라져도 금세 대체되어 버리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외된 이들의 실상을 하나둘씩 접하다 보면 슬픔이 안개처럼 차오르고, 이내 단단히 굳어진 슬픔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슬픔 속에서야 우리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는 '나'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 비록 어려운 삶이지만 연대와 상호부조 속에서 빚어지는 따뜻함, 그리고 약자들을 위한 치열한 고민으로 조금씩 더 나아져야 할 제도 안에서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이뤄지길 바라본다. 가난하지만 적어도 '나'답게는 살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