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Love

by wnn

아주 어릴 적 나의 꿈은 연예인이었다.

어린아이들이 라면 누구나 다 한 번씩 꿔보고 하는 그런 꿈이었다.

그것도 남들과는 다르게 나는 두 가지를 선택했다. 액션배우 겸 가수.

'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무엇이든지 전부 할 수 있는 것만 같았다.

굳이 하나만 고르지 않아도 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늘 장래희망에 대해 물을 때면 액션배우 겸 가수라고 꼭 대답했다.


그렇지만 내가 노래를 잘 불렀냐, 아니면 좋아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연기를 하거나 춤을 추는 등 내가 바랐던 액션배우 겸 가수를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능력치들은 하나같이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조금씩 머리가 커가면서 나는 하나둘씩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고른 건 다름 아닌 프로파일러였다. 계기는 단순했다.

범죄, 괴담, 귀신 등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모두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그래서였다.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에 대해 알면 알수록 훨씬 더 내 입맛에 맞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일반적인 초등학생들과는 다르게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고,

꾸준히 범죄와 범인들을 연구하고 알아가야 하는 범죄심리학은 완전히 나를 매료시켰다.


사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놓지 못하던 꿈은 또 있었다.

어느덧 '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잊어버린 나였지만 그 당시의 나는 웹툰작가를 꿈꿨다.

하지만 내 주위에서는 내 꿈을 갉아먹어갔다.

현실적이고 또 객관적이기 그지없는 우리 이모는 내게

"너 그림 못 그리잖아. 어떻게 웹툰작가를 해?"

라고 일침을 가하기 일쑤였다.

캐나다에 있는 이모네 집에 놀러 가서 한 달가량 있을 당시에도 그림을 그리며 즐거워하던 내게 이모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 꿈도 놓지 못했다. 나는 이야기를 쓰고, 연출하며 그려나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그저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서 그런 것으로만 생각했다.


중학생 시절을 그렇게 보내던 나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글쓰기에 빠져들었다.

생각해 보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책 읽는 건 아주 어린 시절에도 사랑했고, 외동에 친구 하나 없던 나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그 속에서 이야기 꽃을 피워가는 게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초등학교 6학년 즈음부터 다니던 영어 공부방에서는 나와 레벨이 맞는 친구들이 없어 홀로 선생님과

영어로 소설을 연재하듯이 써가며 영어 공부를 했다.

그때의 선생님은 내게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하셨다.

영작한 내용을 보며 어법상 맞게 고쳐주며 설명해 주셨고,

내가 써가는 글을 선생님은 늘 기대하시며 칭찬을 해주셨다.

그때도 나는 그 칭찬보다는 마법 이야기로 가득한 다음 회의 글쓰기를 항상 기대했다.

그러던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깨달은 건 그걸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사실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웹툰작가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는 것도.


중학교 3학년.

반에서 겉돌던 내게 다가와주었던 한 명의 동급생은 내가 벽을 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새로운 걸 가르쳐주었다.

웹툰에 한창 관심이 많던 우리 둘이었고, 그녀는 그림을 매우 잘 그렸기에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그녀가 알려준 '커뮤'라는 것은 내게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인터넷 속에서 캐릭터를 만들어 그 캐릭터가 되어 노는 것은 재밌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한 장르를 찾아냈다. 바로 'BL'.


그게 무엇인지 몰랐던 나는 내 친구 나무위키를 찾아 들어갔다.

bl이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하나 정독하고 나서야 나는 신기함을 느껴 뭣도 모르고 곧바로 bl 커뮤에 신청했다.

한 번 커뮤를 하고 난 나는 그 속에서 매력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bl을 썼고, 커뮤를 하면서는 본격적으로 나만의 소설을 썼다.


남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시기, 코로나가 터졌다.

나는 자퇴했다.

코로나 때문에 입학이 미뤄지던 시점이었기에

사실상 나는 고등학교는 단 한 번도 가서 수업을 들어본 적 자체가 없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한국에서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않을 것이라 마음먹은 후였다. 너무나도 많은 상처에 데인 후였다.

학교도 갈 필요가 없었던 나는 1년 전보다도 더 안으로 파고들었고, 유학을 준비하며 IELTS 시험을 공부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며 끄적거렸다.

그러면서 나는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bl 소설을 하나 작성해 보자, 였다.

이미 로판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따라서 써보며 연습하던 나였기에 두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늘 종이와 펜을 들고 다니면서 내 소중한 친구와 함께

bl 이야기를 나누며 캐릭터의 관계성을 짜면서 놀았다.


photograph by Luie


그로부터 약 2년 뒤.

나는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가 돌아왔다.

내가 내 아픔을 감추려 하다가 도무지 되지 않아서 터뜨리고 만 후였다.

안 그래도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었던 나는 캐나다에서 돌아온 직후에도 여전히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이미 자퇴와 동시에 찾아왔던 난독증은 더욱 심해져 날 괴롭혔다.

이러한 모습들이 내 상태가 굉장히 심각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난 귀국하자마자 부모님과 약속했던 대로

병원을 다니고, 상담을 받았다. 그러면서 내가 선택한 건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그것도 몇 년 전에 캐릭터 이름과 그들의 상처 정도만 대충 정해놓고 말았던, 그 bl 소설을 말이다.


어떤 날은 한 자도 못 읽었고, 또 어떤 날은 100자 이상 썼다.

한 번에 나아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난 그냥 받아들이며 쓰기로 했다.

난 연재를 하거나 당장 어딘가에 제출해야 하는 공모전 글쓰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가진 게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원래도 집순이였던 탓에 굳이 어딘가를 나가지는 않았다.

대신에 나는 내 글쓰기에 내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게 하루에 100자씩 겨우 쓰던 나는 소설을 다 써냈다.


두 번의 수정을 거친 후, 나는 고민하다가 투고 사이트를 찾아들어갔다.

그곳에서 닥치는 대로 보이는 모든 출판사들에게 내 글을 투고했다.

회신이 돌아오는 곳도 있었고, 아닌 곳도 있었지만 난 그냥 투고했다.

그리고 몇 군데에서 나와 계약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주었다.

그 메일들 중 가장 첫 번째의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이게 내 길이구나 싶어서 정말 말 그대로 방방 뛰면서 기뻐했다.


고심한 끝에 한 군데의 출판사를 골라 계약을 했고,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던 나는 서툴렀다.

그럼에도 출판사 MD 분은 잘 챙겨주셨고, 나는 꼼꼼히 읽으며 이모, 엄마, 아빠 등 내 가족들과

더블 체크까지 해가면서 열심히 애썼다.

그리고 난 책을 냈다.

내 데뷔작, 내 첫 소설, 나를 일으켜준 글.

Blue Love.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책임에도 나는 아직까지도 이 글을 우리 가족 중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했다.

bl이라는 장르적 특성도 있지만 내가 쓴 이 소설은 19금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조부모님은 고사하고, 부모님께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이모는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세상 어떤 부모가 자신의 딸이 19금을, 그것도 bl로 작성했다는데 볼 수 있을까.

충분히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작가로서 불리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나는 내 방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거실에서는 성당에서 만나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삼촌들과 나의 엄마, 아빠가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빠가 여느 때처럼 먼저 잠에 든 듯했다.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고, 엄마와 잠들지 않은 삼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는 엄마가 말하는 내 글 이야기도 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점도 영향을 미쳤지만, 앞서 내가 생각한 것처럼 내 딸이 그런 퀴어 소설을 썼다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것도 19금이라니.

그런 이야기를 방에 누워있다가 들은 나는 그동안 어렴풋이 들었던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아, 나는 평생 내가 쓴 소설은 못 보여주겠구나.


그 생각이 든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조차도 보여주지 못하는 글을 쓰게 될 나 스스로가 조금은 안쓰러워졌다.

다른 글이야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겠지만 난 소설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노력해서 투고를 하고, 그걸 받아준 출판사와 함께 낸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내 글이 상품성이 있으니 출판을 도와준 것일 테니까 남들에게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글을 보여주는 게 내가 개인적으로 썼던 글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엄마, 아빠 딸내미 작가예요. 저는 이렇게 글을 써요, 이렇게.


게다가 워낙에 서정적인 표현이나 감정선을 살려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데다가

힘든 시절, 나를 지켜준 글이었고, 그 모든 것에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내 모습도 녹아들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그 말이 속상했는지도 모른다. 또 내 첫 소설이기도 했으니까.

그게 너무 서운했던 것 같다. 부정당한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고 해서 내가 bl을 쓴 걸 후회하진 않는다.

19금을 쓴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난 개인적으로 그 모든 글 쓰는 과정이 전부 즐거웠고,

그런 모습 전부 다 나이니까.

그래서 난 다음 소설도 내가 원하는 대로 bl 19금 소설을 쓸 것이다.

언젠가는 내 글이 웹툰이 되고, 많은 이들이 사랑해 주는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그때까지 계속.


대신에 내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꿈도 여전하기에 그 글도 쓸 것이다.

예를 들면, 단편 소설 같은 거.

그래서 지금도 쓰고 있다. 그게 bl, 스릴러, 로맨스, 그 무엇이 되었든.

난 그냥 글쓰기가 좋은 것이고, 앞으로 글을 써서 보여줄 수 있는 날들은 차고 넘쳤으니까 전혀 아쉽지 않다.

그 이야기를 듣던 그때보다 난 지금 더 성장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