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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과 관련된 트라우마 및 자살, 자해 관련 이야기가 나오니 읽기 전에 유의해주기 바랍니다.*
6학년이 되었다고 해서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그저 머리가 조금 더 컸달까.
A와도 여전히 잘 지냈고, 선생님과의 수업도 좋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때까지 만 이었다.
"안녕, 앞으로 잘 부탁해."
어느 날, 불쑥 우리 반으로 전학 온 여자아이.
얼굴 되게 하얗다.
B를 처음 봤을 때, 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며칠 후, 내가 A에게 같이 놀자고 제안했을 때였다.
B는 쑥스럽다는 듯이 다가와서 함께 놀아도 괜찮냐고 물었다.
우리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같이 놀았다.
이야기를 해보면 해볼수록 나와 맞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A는 달랐던 것 같다.
그날을 기점으로 어느 순간부터 A는 B와 시간을 더욱 보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나와의 시간을 보내주기를 바라는 A가 점점 나를 멀리 하더라도 별 말 못 했다.
사실 이미 그전부터 우리 둘은 삐걱거리고 있었다.
'친구'라는 단어를 다른 사람들처럼 '반 친구'라는 단어를 쓰기 위해 허투루 쓰지 못하던 나는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A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도 어렸고, A도 어렸다.
우리 둘은 어린아이였다 보니까 당연하게도 어른스럽게 대처할 줄을 몰랐다.
털털하고 마음에 들면 적극적으로 다가가던 나와는 달리 꽤나 내성적이고, 친한 사람에게만 마음의 문을 열어줄 정도로 소극적이었던 A는 나의 그런 모습이 과격하다고 생각했던 듯싶다.
거기에 자신의 마음에 든 B에게 새로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선을 계속 긋던 내가 탐탁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우리 둘은 종종 싸우기 시작했던 참이었다.
그 와중에 우리 둘 사이를 파고든 B가 내게는 전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날 더 울게 만들었던 건 A의 태도였다.
내 모든 상처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A는 나를 B로부터 전혀 지켜주지 않았다.
평소에 내가 최고의 친구라던 A가 말이다.
B는 A를 자신만의 친구로 만들고 싶었던 듯했다.
B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나는 제 마음대로 조종도 못 할 것 같은 아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A와 내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일이 잦았고, A 뿐만 아니라 조금씩 친해진 반 아이들에게
내 험담을 하고 다녔다.
당연하게도 몇 명 되지도 않는 데다가 고작 두 반이었기에 그 말들이 돌고 돌아
내 귀로 들어오지 못할 일은 만무했다.
그리고 그 사실과 내용을 전부 알려준 건 다름 아닌 A였다.
그러나 분명 자신은 B의 앞에서 내 편을 들어주었다고 확신했다.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나는 믿기로 했다. 그것마저 믿지 않는다면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생각보다 험담을 했다는 것을 전해 듣는 것은 더욱더 아픈 일이었고,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친구에게
했다는 점이 더욱이 날 괴롭혔다. 그래서 믿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B는 자신의 가정사를 A에게 얘기해 주었다고 하는데, 결단코 나는 그걸 전해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B는 내가 그 가정사를 소문내고 다녔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피해자인 척했다.
당연히 이때, 이건 나를 반에서 쓰레기 취급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걸 반에 퍼뜨린 건 B 본인이었다.
반 아이들의 멸시를 받으며 학교를 다시 다니게 되자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이에 난 A를 불렀고, 우리 집에 오게 된 A에게 너무 힘들다고, 도대체 그 가정사가 뭐길래 나한테 다들 이러냐고, 나 좀 제발 도와달라고 울부짖었으나 A는 그런 나를 가만히 보기만 하다가 아무 대답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식으로 험담을 하며 반 아이들과 A에게 나를 깎아내리는 일이 몇 번 있고 난 뒤였다.
어쩐지 A의 모습이 달라진 듯했다.
그걸 깨달은 건 정말 우연이었다.
교실에서 시력 검사를 하던 날이 있었는데, 그날, 나는 시력 검사 때, 한쪽 눈을 가리는 도구로
내 눈을 꾹 누르고 검사를 실시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그쪽 눈이 잠시간 뿌옇게 되었다.
그 탓에 얼마 전에 병원에서 측정했던 시력보다 그쪽 눈이 낮게 나왔고, 난 이 이야기를 A에게 해주었다.
재미난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옆에는 B가 있었는데, B는 잠자코 내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당연히 그건 착각이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B는 내 말에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B는 늘 그래왔었다.
내가 어떤 의견을 말할 때면, 매번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면서 내 의견이 틀렸다는 걸
입증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던 듯 여느 때처럼 내게 그냥 내 시력이 안 좋은 것 아니냐며 심한 말을 했다.
내게 정확히 '내 눈이 삐었으니까 그때 병원에서 확인했을 때도 이상하게 나오지.'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어이가 없어서 황당하여 있을 때, A는 슬그머니 그 의견에 동조하는 표를 던졌다.
난 B의 말보다도 A의 동의가 더욱 마음을 후벼 파는 걸 느꼈다.
게다가 몇몇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하면서 나를 끌고 다녔다.
아니, 정확히는 A도 친구랍시고 아직 버리지 못했던 나는 내가 버림받기 싫어서 따라다녔다.
그럴 때면 그들은 모두 내가 그들의 말을 듣기를 바랐다.
마치 시중처럼.
마치 1학년 때처럼.
이미 내 모든 상처를 알고 있던 A는 나를 외면했다.
그때, 나는 앞으로 절대 다른 사람에게 내 상처를 드러내어 보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다짐했던 것 같다.
photograph by Luie
끝내 참다못한 나는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내 친구 이야기라는 뻔한 거짓말을 해가며 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B라는 친구가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겪은 모든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런 조치도 없이 나를 내버려 두었다.
믿었던 선생님이었지만, 그때 처음으로 원망을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녀를 너무나도 좋아했던 나는 그 감정마저도 무시했다.
그 선생님은 실제로는 아이들을 틀에 박힌 학교 교육이 아니라 자신만의 제대로 된 교육으로 가르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던 사람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심지어 내가 학교에서 저금하던 통장을 잃어버려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을 때, 뒤늦게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깜빡하고 그 사실을 알라지 않아 안 그래도 바쁜 자신이 직접 나를 위해 수고를 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불같이 화를 내어놓고서도 사과 한 번 안 했을 때도 난 몰랐다.
또 정확히 어디라고는 안 하겠지만, 인터넷에 글을 연재하던 그녀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모은 돈으로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통장에 저금한 내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게시글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우리 가족을 욕하는 댓글을 달았다.
내가 재벌 딸이라 저럴 수 있는 것이라느니, 부모가 경제관념을 잘못 가르쳤다느니, 부모의 이름으로 입금되어 온 것을 보면 애가 모은 게 아니고 부모가 거짓말한다는 것이라느니, 자신은 얼마를 모았는데, 고작 13살짜리가 모은 금액에 회의감이 온다느니, 뭐 대충 그런 내용들이었다.
나는 그 모든 글을 하나하나 읽고,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내가 직접 상황을 설명하는 글을 달았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달랑 전화 한 통 하여 내게 댓글을 보지 말라고 주의만 준 게 다였음에도 난 여전히 몰랐다.
물론 졸업하고서도 한참 후에서야 깨달았지만.
어쨌든 나는 그저 묵묵히 학교를 다니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울음을 토해내며 부모님께 이 모든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는 곧바로 학교에 전화했다.
그때가 겨울 방학까지 2주를 앞둔 시기였는데, 아무래도 내가 몸이 안 좋아서 2주 먼저 쉬어야겠다고 말이다.
결석 처리 해도 상관없으니 쉬게 해달라고 했다.
그나마 이 연락을 받은 담임 선생님은 그 2주를 결석이 아니라 출석으로 처리해 주셨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 방학을 하기 전에 1~2주 정도 학교를 나가야 하는 때가 다가왔다.
중학교 배정 결과를 받기 위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복도에서 기다렸다.
'한 명씩 나누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나는 한편에 서있던 A를 마주쳤다. A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감정이 울컥 솟아올랐다.
그렇지만 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다.
이미 방학 내내 혼자서 곱씹고, 또 곱씹었던 말이었다.
"나, 너랑 이제 더 이상 친구 안 할 거야. 나 아는 척하지 마. 난 앞으로도 평생 너 용서 못해."
그게 내가 A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었다.
난 A가 뭐라고 더 대답을 하기도 전에 홱 몸을 돌려 교실로 들어갔다. 마침 나를 불렀던 참이라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A의 앞에서 죽어도 보여주기 싫었던 눈물을 보여줄 뻔했다.
아무것도 없이, 아니, 어쩌면 트라우마와 상처는 가득 얻었으니 남들과 얻은 것들만 따진다면 양은 비슷한 걸까.
난 그렇게 아득바득 졸업을 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나는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그때도 사람에 대한 경계가 가득했던 때이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덜 했다.
아직 14살의 어린 나이였던 나는 진짜 친구를 원했다.
나도 남들 다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그때부터 나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