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이모 Aug 01. 2023

팀장 승진!

우리 팀은 총 10명이다.

순서대로 보자면,

팀장님, 부팀장님, 수석님,

나의 동기 Lee, 나,

J언니(후배인데 언니다), Ho(후배인데 동갑이다),

달걀 2명(아직 알을 깨지 못했다며 스스로 붙인 별명이다), 그리고 막내이다.


오늘, 대망의 휴가 시즌을 맞아, 팀장님이 휴가를 가셨고, 부팀장님도 가셨으며, 눈치작전을 펼치던 수석님이 가셨다. 그러더니 Lee가 애매한 웃음을 띠며 "수고해라"는 말을 남기고 어제 퇴근 직전에 휴가를 썼다. 그 애매한 웃음은 무엇이었던가.


오늘 출근해보니, Lee는 어제 당직을 서고 꼼꼼하게도 "당직서류는 봉이모에게 맡겨달라"는 부탁까지 해두고 휴가를 갔더랬다. 그녀의 꼼꼼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늘까지 그녀는 아침 당직이었는데, 그 당직도 달걀1에게 부탁했고, 관련 회사 연락은 미리 내게 부탁해두었다. 이렇게 다 몰리기도 쉽지 않은데, 그녀는 이 많은 일을 두고 왜 휴가를 간거지?


내일 출근할 Lee에게 물어볼 정이지만, 하루를 다 보내고 나니 알듯도 싶다.


오늘은 매주 요일마다 있다는 주간미팅 날이었다. 하.. 리 지점에 벌써 2년째 근무인데 의가 화요일임을 오늘에야 알았다는게 개탄스럽다. 참석자는 지점장님, 부지점장님, 1팀장님(부재중), 2팀장님 등이다. 1팀장님 휴가에도 불구하고 회의는 취소 내지 연기 없이 열렸고, 1팀장님의 대직은... 내가 되었다. 

그렇다, 팀장님 대직은 원래 Lee였다구!


여튼 회의실 문앞에서 2팀장님을 만났다.


"1팀장이 되었군, 승진 축하해"

"저, 팀장님,.....갑작스런 승진이라 그런데..저 들어가면 뭐해야하나요?"

"일단 니 앞에 발표하실 분 있어, 그 분 이야기 끝나고 넌 이 자료 간추려서 읽으면 돼"

"앞 발표가 끝난건지...그니까 제 차례인지 어떻게 아나요..?"

"느낌적인 느낌으로"

"......."

"내가 눈짓으로 알려줄게"

"아...넵"


회의가 시작되었다.

지점장님은, "오~ 봉이모 승진했어~ 주간회의를 들어왔네?"를 시작으로,

주간회의 1팀 자료를 보며,

"봉이모 왔으니까 이것 저것 물어볼까? 1번에 이거는 누가 하는거야? 진행이 어때? 뭐뭐 했대?"

"2번은 언제부터 했다고 했지? 이게 어디서 열리는거래?" 등등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셨다. 명히 우리팀 이슈인데 난 하나도 대답을 못했다. 그럼에도 지점장님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자문자답형 회의를 이어가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 회의시간에은 오늘보다 훨씬 짧은게 틀림없다.


힘겨운 아침을 보내고 나자 점심시간이 왔다. 폭염 속을 뚫고 밥집에 도착해보니 여기서도 내가 제일 선임이었다.  '어쩌다가 제일 선임이 된걸까...' 하며 멍 때린 채 찌개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보고있었는데, 어느새 반찬도 가까이 놓여있고 물컵도 채워져있었다. 오-대접받는구나. 하루짜리 승진이 나름 장점도 있군.


밥먹던 후배들이 요새 들어온 신입들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신입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후배들인데, 그들 사이의 질서가 있는 것 같아 흥미롭게 대화에 참여해보았다.


"신입들이 그러는게 뭐 신기할 것까지 있어? 나 때는~"

.

.

.


난 순간 공기가 정지하는걸 느꼈다.

나 때는,

나 때는..

내가 나 때는 말이야를 쓰다니...

라떼세대가 되었어..... 으앙.


.

.

.

터덜터덜 집에 오며 오늘의 특별승진을 반납할 준비를 하였다.

일일 팀장 체험은 쉽지 않았다.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까. 나도 라떼 팀장님이 되어가는 걸까.

.

.

.

아니다. 내일 팀장님이 돌아오시면 난 예전처럼 폭우처럼 쏟아지는 일 가운데 후배들을 지켜주는 파라솔같은 선배가 되어야지. 라떼를 입에 올리지 않던 어제로 돌아갈테다.

이 모든 건 나를 신세대 선배로 돋보이게 해주던 라떼파 팀장님, 부팀장님, 수석님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들만 돌아온다면.

Lee에게 주간회의를 나에게 넘긴거냐며 아침 당직을 가져가라고 협상을 시도해본 뒤,

라떼 없이 조회도 없이 담백한 아침을 맞이 할테다.



팀장님 이하 에브리원, 플리즈 컴백 순.





작가의 이전글 물놀이와 밤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