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붕괴를 추앙하고 싶어졌다
영화라는 장르만큼 사람의 취향을 타는 영역이 있을까.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날에는 시원시원한 액션이나 웃음으로 현실을 잊고 싶기도 할 거고 어떤 날에는 깊이 슬퍼지고 싶기도 할 거고.
헤어질 결심은 영화의 예술성 자체를 떠나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다음은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내가 떠올려본 이야기 주제들이다.
1. 사랑이라는 감정은 결혼제도 안에서만 유효한가? (서래의 말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해서 좋아하기를 중단해야만' 하는가)
2. 소위 불륜이라는 것을 저지른 사람들은 도덕적 지탄을 받아야 하나? 얼마나, 언제까지?
3. 같이 성장하는 사랑과 서로 파괴하는 사랑 중 어떤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긍정적이라는 이유로 전자인가, 비극적이라는 이유로 후자인가?
4. 서래는 왜 해준의 사랑이 끝났다고 한 순간 자신의 사랑이 시작됐다고 했을까? 그리고 왜 사라지는 것을 택했을까?
5. 해준의 붕괴는 무슨 뜻일까. 서래는 왜 그 말을 녹음해서 계속 들은 거지.
영화를 보는 처음 1시간 동안은 1, 2번 생각을 계속했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게 절절한 세기의 사랑인지 불륜 미화 작품인지 가려내려는 매의 눈으로.
후반 1시간은 3~5번 생각을 곰곰이 하면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영화가 의도한 바인 것 같다.
내게 있어 해준의 붕괴 선언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해준은 경찰로서의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일이 본인 그 자체인 사람이다. 서래에게 푹 빠져 경찰로서 해야 할 본분을 하지 못했다는 것과, 서래의 범죄 은폐를 돕기로 했다는 결심은 자기 파괴 그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서래에게 해준이 붕괴했다는 그 말은 '난 너를 그만큼 사랑하게 됐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담배는 나가서 피우라며, 진심 없이 '사랑해'만 외쳐대는 사기꾼 남편은 주지 않는 사랑.
서래는 그래서 해준에게 미결 사건이 되고 싶었다. 해준이 해결할 수 없어 계속 고민하고 들여다봐야 하는 그런 사건. 해준의 자기 파괴적인 사랑을 받으면서도 이게 진짜 해준을 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을 서래는, 그래서 홀연히 해준의 발 밑에서 사라지기를 택한다.
여기서 또 한 번 생경한 단어의 힘을 느꼈다. 올해 초 '날 추앙해요'라는 대사를 했던 나의 해방일지의 미정이 생각이 났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들어볼 수 없는 낯선 '추앙'이라는 표현은 구 씨를 어리둥절하게 만들면서 사전을 켜 검색하게 만들었다. 높이 받들어 우러러 달라. 그때 미정이가 '날 사랑해줘요'라고 했다면 그 장면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을 것이다.
해준의 붕괴도 마찬가지였다. 서래는 (중국인이라 더 당연하겠지만) 사전을 켜서 붕괴의 뜻을 찾아보았다. 해준은 서래를 향한 마음 때문에 '깨어지고 무너졌다'. 그래서 그날은 서래에게 당신이 날 사랑한다고 말한 밤으로 기억된 것이다. (물론 해준은 본인이 내뱉은 그 말의 의미를 몰랐던 것 같다. 너무 현실적이면서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사랑이 넘치는 시대다. 노랫말이나 문학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가끔은 사랑을 강요하는 시대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에는 오히려 사랑이 없어진 시대다.
바람 빠지는 시옷과 뱀 지나가듯 부드러운 리을이 입에서 빠져나가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사라지다'와 비슷한 발음인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그래서 구 씨와 서래에게 추앙, 붕괴는 오히려 마음 정가운데에 박혔을 것이다. 발음하기도 어렵고 쉽게 생각하기도 어려운 단어들. 진심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는 사랑 대신 다른 말을 골라봐야 할 때일지 모른다. 너무 따뜻해 때론 공허한 외침처럼 들리는 사랑이라는 그 단어, 잠시 나중에 꺼내보기로 하고.
나라는 책을 천천히 읽어달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세상 사람들 모두 표지만 보고 판단하는 나를,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읽어주는 사랑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