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h on Dec 06. 2022

엄마 아빠의 헤어짐은 내 존재의 부정 같아서

지극히 평범한 이혼가정, 열한 번째 이야기

우리 집은 결혼기념일을 챙길 일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혼기념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누구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이거나 기념할 만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하나가 없어지면 하나가 생겨야 하는 게 세상 이치인데. 그렇게 새로운 충족 없이 결핍만 늘어가는 게 부모의 이혼이었다.



정확하지 않지만 이혼기념일을 굳이 만들어 기억해보자면 20년 정도 전인 듯하다. 이제 나는 번듯한 직장도 다니고 돈도 번다. 그것보다도 그간의 외로움을 자세히 글로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20년 간 느꼈던 감정의 근원이 무엇일까, 찬찬히 생각해보면 부모의 이혼은 자식에게 곧


1. 더 이상 집=안전한 보금자리가 아니다

2. ‘나’의 존재가 부정당한다.


1번은 비단 이혼가정의 문제라기 보다도, 화목하지 않은, 가정불화가 있는 모든 가정에 해당할 것이다. 다만 2번의 ‘존재 부정’과 비슷한 감정은 이혼이라는 큰 이벤트여야만 가져오는 정도의 것이리라.


본능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근원에 대해 생각한다. 초등학생인 내가 ‘근원’이나 ‘존재’ 같은 단어를 곱씹을 리 없었겠지만, 아무리 어리더라도 무의식 중에 내재하는 ‘나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있었을 것이다.


모든 생명-‘나’의 입장에선 ‘나’-은 부모의 사랑과 결합으로 태어난 존재다. 의도치 않게 잉태된 생명도 있다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만남과 역사로 만들어지는 데서 시작하니까.



그런데 그 결합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끊어지는 일이면 결합의 산물인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이미 만들어져 버려서 어쩔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건가.


울어버리고 답을 내놓으라고 하고 싶지만 어린 시절의 나도, 그때의 나와 같은 입장에 놓인 지금 아이들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다들 흔들리는 지금 나까지 울어버리면 안 되니까.




오래된 일이라고, 괜찮아졌다고 해도. 그렇게 몇 년 간 속으로 참아온 울음과 해결되지 못한 의문은 은 불안이나 미성숙이 되어 평생을 함께 할 듯하다. 갑자기 찾아오는 행복을 의심해가면서.



매일 그렇지만, 눈이 오는 오늘은 유난히 앞으로 찾아갈 행복에 대한 의심 없이 살고 싶어 진다.





작가의 이전글 그래도 등 뒤에서 욕하지는 않겠다는 자존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