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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h on Feb 13. 2023

엄마, 이혼해도 괜찮아

지극히 평범한 이혼가정, 열세 번째 이야기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한 건 그들이 40대 중반일 시절이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의 그 나이대 선배들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많지도 않은 나이다. 아이가 아주 어리거나, 아예 아이 없이 딩크를 택한 선배들도 적지 않다.


내 부모의 40대는 어땠을까. 아직은 젊고 맑은 그들의 일상에 그늘이 언젠가부터 짙어졌겠지. 꽃길만 펼쳐지리라 예상했던 결혼생활의 민낯은 언제부터 드러났을까?


같이 있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마음을 연 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애초에 대화가 통했던 적이 있었나? 당장이라도 이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 아이들만 없었다면 실행이 쉬웠을 텐데.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아이의 얼굴을 보면 부모의 이혼이라는 꼬리표를 차마 줄 수가 없다. 어떻게, 참고 살아볼까.. 등의 고민을 수없이 했으리라.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그 불협화음 앞에서 쉽게 이혼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자식이 있다면 더더욱. 제 아무리 '쿨해졌다'지만, 이혼가정의 자녀에 대한 편견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내 자식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물려줘도 모자랄 판에, '결핍'을 안겨주다니?


사랑의 결실이었던 아이(=나)로 인해 본인의 행복을 향한(=이혼)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종종 이혼은 아이에게는 가혹한 이기적인 선택으로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혼가정의 자녀로 십여 년을 지나 살며 서른을 넘긴 지금, 부모 원망도 해보고 세상 원망도 해봤지만 결국- 부모의 이혼 그 자체만이 나를 흔드는 원인의 전부는 아니었음을 깨달아간다. 40 중반의 젊은 엄마에게,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엄마, 이혼해도 괜찮아.”



부모의 자존과 행복이 자녀에게 흘러들어오는 것이라면, 그게 꼭 부와 모의 결합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다. 어떤 이유로 헤어졌더라도 부와 모 각각의 독립적인 행복으로 아이는 행복해질 수 있다. 그걸 가로막는 건 이혼가정을 ’결혼의 실패‘로 규정짓는 한국사회의 폐쇄성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실패했으니 쉬쉬해야 해, 뭐 자랑이라고, 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저 집은 부모가 따로 산다더라-로 시작되기도 한다.


사춘기의 나는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지만 지금이나마 그때의 나에게 크게 소리쳐주고 싶다.


우리 엄마아빠는 더 큰 행복을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것이고, 그 행복은 너에게 흘러들어 올 일만 남았다고. 다른 사람들의 말? 다들 참 시간이 많은가 보다-해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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