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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스 홍 Dec 12. 2023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풍경

빨간 베레모

12월 바야흐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왔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거리는 표정이 없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움츠린 채 빠르게 지나칠 뿐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성탄의 기쁨을 잊어버리고 분주하게 살아간다. 이맘때면 어딜 가나 종소리와 함께 흥겨운 캐럴이 울려 퍼지고 반짝반짝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며 두근두근 들뜨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전쟁소식, 끊이지 않는 지진, 기상이변 현상은 사람들을 크리스마스의 설레는 분위기와 멀어지게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쓸쓸한 12월은 마음을 허전하게 하고 자꾸만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음원 저작권문제로 지금은 길에서 공짜로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때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 앞 레코드가게에서는 흥얼흥얼  따라 부르고 싶은 캐럴이 겨울 내내 배경 음악처럼 흘러서 눈이라도 오면 나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마술을 부리 곤했다. 지금 첨단의 기술력으로 화려한 영상과 최상의 음질을 들려주는 음원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어느 날 레코드가게가 문을 닫았을 때 나는 오랜 친구를 잃어버린 것처럼 슬펐다.


여행사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연말이면 여러 항공사나 리조트에서 홍보용 달력과 다이어리가 넘치게 들어왔는데 세계 각국의 멋진 풍경과 미인들이 모델로 나오는 달력은 그때도 꽤 인기가 많아 주변에서 달력을 구해달라는 부탁이 쇄도하기도 했다. 가보지 못한 낙원처럼 지중해나 남태평양 어디쯤 새파란 하늘빛 바다와 금가루 같은 모래가 반짝이는 비치에 아름다운 그녀들을 보고 있으면 이국의 환상에 넋을 놓고 빠져들었다. 12월이 되면 환하게 웃고 있던 달력 속 그녀들이 보고 싶다. 요즘은 작은 탁상 달력도 구하기 힘들고 스마트폰 안에 그림 하나 없이 숫자만 늘어선 캘린더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갑갑하다.


크리스마스에 사라진 풍경 중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바로 크리스마스카드이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부터 사람들은 손으로 꾹꾹 정성스럽게 쓰던 예쁜 카드대신 크리스마스 문구나 메시지를 SNS로 주고받는다. 연래행사처럼 연말이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는 것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던 일은 기억에서 잊혀져간다. 결국 문구점마다 그 흔하던 크리스마스카드도 자취를 감춰 아득하고 몽롱한 크리스마스 풍경이 그려진 카드를 사고 싶어도 카드 파는 곳을 찾기 어렵다.


크리스마스에는 뭔가 특별한 선물을 기다리게 된다. 그동안 크리스마스에 받았던 여러 선물 중 기억에 남아 미소 짓게 하는 선물이 있다. 그때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 행사를 많이 했는데 성극과 찬양 대회가 끝나면 미리 정해져 있던 마니또에게 선물을 주는 시간이 있었다. 선물교환 시간까지 마니또는 비밀이어서 누굴까 궁금해하며 성탄절을 기다렸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사람은 기타를 잘 연주하며 찬양을 인도하던 **오빠였는데 그즈음 부쩍 나에게 친절하고 눈이 보이지 않게 눈웃음을 지어 보여서 혹시 나의 마니또는 아닌지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두구두구! 드디어 선물 교환시간이 다가왔고 내 차례가 되어 선물을 받았다. 포장지를 살살 풀어보니 세상에! 루비처럼 빨간 예쁜 베레모가 있었다. 나는 그 베레모가 무척 맘에 들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써보았다. 그리고 나도 **오빠를 향해 눈웃음을 막 지으려는 찰나에 마니또로 소개된 사람은 이럴 수가!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중학생 남자아이였다. 여드름투성이에 까불거리던 그 아이가 내 마니또일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모자를 벗을 수도 없고 나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모자 정말 고마워!”라고 말했다.


어쩌다 빨간 베레모만 보면 나는 오래전 그 일이 생각나서 풋풋 웃음이 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다시 한번  빨간 베레모를 선물로 받고 싶다.

 


그림책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만들어 본 크리스마스 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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