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손을 뻗어 기우뚱거립니다. 겨우 하나를 잡으니 그 꼴이 우스웠는지 바람이 휙 지나가며 계수나무를 흔들어 놓습니다. 요즘 아침 산책길마다 향기에 취한다는 말을 실감하는데 바로 집 앞에 있는 계수나무 때문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계수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팔랑팔랑 흔들리며 달달한 향을 뿜어냅니다. 동글동글한 잎을 주워 냄새를 맡으면 영락없이 국자 가득 부풀어 오르던 달고나 냄새가 납니다. 잎의 앞면보다는 뒷면에서 방금 떨어진 잎보다는 하루 전 날 떨어진 마른 잎에서 향이 더 진하게 퍼집니다.
낙엽을 쓸고 계시던 경비아저씨에게도 계수나무의 비밀을 살짝 알려 드리니 아저씨는 “오! 정말 향기가 나네요. 알려줘서 고마워요.”하며 인사를 합니다. 아이들 그림책 수업 시간에도 계수나무 잎을 주워서 가져가니 아이들도 신기해하며 서로 냄새를 맡아보겠다고 모여들어 수런수런 거리다 까르르 웃습니다.
사실 지난주 내내 모호한 슬픔으로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눈물이 나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요. 한참 동안 열어보지 않은 메일엔 유효기한이 지난 소식들이 먼지처럼 쌓여 가고 거울 속에 나는 거울 밖의 나보다 빨리 늙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해가 점점 짧아져서 저녁이 빨리 오는 것도 서글펐습니다.
집에 콕 박혀 빈둥거리다 베란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니 어느 틈에 노랗게 빨갛게 물들던 나무들이 벌써 나뭇잎을 떠나보내고 있었지요.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서 집 밖으로 나왔는데 어디선가 달디 단 시럽냄새가 진동하더군요. 킁킁 냄새를 따라가니 오후의 가는 햇살을 받으며 계수나무가 노랗게 웃고 있었습니다. 분명 나를 향해 웃으며 말을 걸었지요. ‘왜 이제야 나를 알아본 것이냐고...’ 하면서요.
사락사락 너무 예쁜 나뭇잎들이 바람에 뒹굴고 이름 모르는 나무에는 빨간 열매가 열렸습니다. 계절은 반복되지만 매번 최선을 다하는 나무들을 보면 위로를 받습니다. 큰 행운보다 작은 기적을 날마다 보여주는 식물들이 나는 좋고 식물처럼 순하게 살다가 식물을 키우는 흙이 되고 싶습니다.
해마다 길에 떨어진 단풍이나 은행잎들을 주워 다람쥐처럼 여기저기 책갈피 안에 숨겨놓고 잊어버립니다. 그러다 까맣게 잊고 있던 다른 계절에 오래된 갈잎들을 찾으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오늘도 계수나무 잎을 몇 장 주워서 싱글거리며 집에 들어옵니다. 침대 머리맡 책상 위에 올려놓고 누워 눈을 감으면 그대로 단꿈에 빠집니다. 며칠째 아무것도 쓰지 못한 빈 노트에 올려놓으니 그대로 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