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디스 홍 Dec 23. 2023

하늘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이 내린다면


나의 브런치 필명은 주디스 홍이다. 다소 진부해 보이는 이름을 필명으로 쓰는 이유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의 이름이 ‘주디스 커’이기 때문이다. 그녀처럼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스럽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은 바람으로 지은 필명이다. 나의 그림책 애장 컬렉션에는 당연히 주디스 커의 그림책이 가장 많고 계속 수집 중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림책 동아리 모임을 함께하는 장명흔 작가님으로부터 또 한 권을 선물 받게 되었다.


그림책 동아리모임 연말행사는 회원 각자가 소장하는 그림책 중 선물하고 싶은 한 권을 가져와 진열하고 순서를 정하여 원하는 그림책을 뽑는 이벤트이다. 그런데 명흔 작가님이 가져온 그림책이 주디스 커의 <깜박깜박 잘 잊어버리는 고양이 모그>였다. 고양이 모그 시리즈는 주디스 커의 대표작으로 나도 물론 소장하고 있는 책이지만 명흔 작가님의 가져온 책이 특별한 건 <고양이 모그>의 2000년도 초판본 1쇄로 영어 원제목이 함께 표기되어 있는 그림책이라는 것에 의미가 크다. 또 책장을 넘기면 명흔 작가님이 “함께해서 행복했어요.”라고 적은 손 글씨 메모가 있어 더욱 나에게는 소중한 그림책이고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또 하나의 특별하고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LA에 사는 막내 동생네가 19년 만에 귀국하여 온 가족이 상봉하게 된 것이다. 우리 형제는 딸 셋에 아들 하나로 내가 맏딸이고 여동생 둘과 나와 일곱 살 차이 나는 막내 남동생이 있다. 어머니는 딸 아들을 절대로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키웠다고 하셨지만 줄줄이 딸만 셋이던 집안에 아들은 어머니의 위신을 살리고 심리적 안정과 기쁨을 가져다준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가 남동생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날 눈이 엄청 많이 왔다. 나는 장갑을 끼고도 손이 시렸지만 눈 오는 것이 마냥 좋아 볼이 빨개지도록 눈을 뭉치며 놀았다. 어머니와 나는 때때로 눈이 많이 오던 그해를 기억하며 남동생을 그리워했다. 위로 누나가 셋이던 남동생은 누나라는 호칭대신 언니라고 우리를 부르며 여자아이들의 놀이를 곧 잘 따라 놀았고 누나들의 잔심부름을 군말 없이 도맡아 했다. 막내는 심성이 따뜻하고 강하고 유쾌한 개구쟁이로 동네친구들 사이에서도 학교에서도 항상 인기가 많았다. 우리 자매는 아들을 각별히 대하는 부모님의 사랑에 질투하지 않았고 엄마처럼 막내를 사랑했다.


막내가 결혼을 하고 얼마 안 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했을 때 서운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헤어져 살 줄은 몰랐다. 10년 전 막내를 보러 온 가족이 미국에 다녀온 이후 또다시 10년이 지났다. 먼 이국땅에서 자리를 잡고 가족을 이루고 사업을 키우는 사이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드디어 귀국하는 날 공항에 마중 나간 극성맞은 누나들은 환영하는 플래카드와 꽃다발을 안고 미어캣이 되어 게이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청년의 모습으로 떠난 곳에서 머리가 듬성듬성한 중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막내를 보는 순간 너무 기쁘기도 했지만 그 얼굴에서 세월의 고단한 흔적을 보는 것이 마음을 콕콕 아프게 했다.


막내가 돌아온 날도 막내가 태어나던 날처럼 눈이 펄펄 내린다. 19년 만에 눈을 본 막내와 올케는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눈을 맞으며 신나 했고 처음으로 눈을 맞은 조카들도 우와! 감탄을 연달아하며 마냥 신기해했다.  


하늘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이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는데 오늘 하늘에서 정말 선물 같은 눈이 펑펑 내려서 우리 남매를 축복해 주는 것 같아 감사하고 기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풍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