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메일함엔 나에게 쓰는 편지가 가끔 온다.
일주일 만에, 어떨 땐 두 달 만에. 세 달을 넘기는 일은 드물다.
언젠가 이혼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고는 증거를 잘 모아두라는 얘기를 보았다. 멍이 들 정도로 맞았으면 얘기가 쉬울 텐데. 사람 피 말리는 증거는 눈에 보이지 않지.
난 언젠가부터 나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의 폭언을 들은날.
아침 9시에 나가 다음날 새벽 2시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던 순간.
술 마시느라 아이를 데리러 가지 않은 날.
기억이란 희미해지기 마련이고, 고통은 강도가 더해질수록 옛 기억이 지워지기 마련이다.
폭언과 주사가 반복되니 이전의 일들은 차마 다 기억이 안 나서 언젠가부턴 일기처럼 하나씩 적어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릴 때 여느 때처럼 3차, 4차까지 술을 마시고 새벽에 귀가한 남편은 만취해 있었고. 날 앉혀놓고 주사를 부리기 시작했다.
"네가 문제야 씨발년아"
"애놔두고 꺼져"
내 팔을 잡아 비틀었다. 평소엔 하지 않던 일이다. 체중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에, 술에 취해 힘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반항할 수가 없다.
부모가 싸우는 소리에 아이가 깼다. 아직 기저귀도 채 떼지 않은 어린 아이다. 아이를 잡고 흔든다.
아.. 진짜 이 사람 오늘 사고 치겠구나.
방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게 5번도 넘었다. 제발 잠들길 바랐는데, 잠들지 않고 계속 다시 나와서 주사를 부린다. 아이는 건드리지 않을 사람인데, 이미 이성을 놓은 지 오래다.
남편이 잠시 방에 들어간 사이 112에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걸면 날 죽일 것만 같다.
집주소와 비밀번호. 아이가 다칠 것 같다고 들어와서 우리 좀 구해달라고.
잠시 뒤 벨이 울리고 잠옷을 입은 아이를 안고 기저귀 두장과 핸드폰만 든 채로 빠져나왔다.
새벽 두 시, 혹은 세시.
아이를 안은 채 친정집 초인종을 눌렀고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날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직 나는 남편과 아이와 살고 있다. 이혼하지도 않았다.
달라진 건 남편의 귀가가 늦어지는 날.
남편의 주사가 날 향할 것 같은 날. 나에게 편지를 써 보낸다. 이 편지들이 증거로 쓸 일이 없길 바라며. 오늘도 연락 없이 귀가하지 않는 날. 아무 일 없이 아침이 오기를 바라며 쓰고 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