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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Aug 10. 2023

나에게 쓰는 편지

결혼과 이혼사이

나의 메일함엔 나에게 쓰는 편지가 가끔 온다.

일주일 만에, 어떨 땐 두 달 만에. 세 달을 넘기는 일은 드물다.


언젠가 이혼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고는 증거를 잘 모아두라는 얘기를 보았다. 멍이 들 정도로 맞았으면 얘기가 쉬울 텐데. 사람 피 말리는 증거는 눈에 보이지 않지.


난 언젠가부터 나에게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의 폭언을 은날.

아침 9시에 나가 다음날 새벽 2시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던 순간.

술 마시느라 아이를 데리러 가지 않은 날.


기억이란 희미해지기 마련이고, 고통은 강도가 더해질수록 옛 기억이 지워지기 마련이다.

폭언과 주사가 반복되니 이전의 일들은 차마 다 기억이 안 나서 언젠가부턴 일기처럼 하나씩 적어보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릴 때 여느 때처럼 3차, 4차까지 술을 마시고 새벽에 귀가한 남편은 만취해 있었고. 날 앉혀놓고 주사를 부리기 시작했다.


"네가 문제야 씨발년아"

"애놔두고 꺼져"


팔을 잡아 비틀었다. 평소엔 하지 않던 일이다. 체중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에, 술에 취해 힘조절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반항할 수가 없다.


부모가 싸우는 소리에 아이가 깼다. 아직 기저귀도 채 떼지 않은 어린 아이다. 아이를 잡고 흔든다.


아.. 진짜 이 사람 오늘 사고 치겠구나.


방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게  5번도 넘었다. 제발 잠들길 바랐는데, 잠들지 않고 계속 다시 나와서 주사를 부린다. 아이는 건드리지 않을 사람인데, 이미 이성을 놓은 지 오래다.


남편이 잠시 방에 들어간 사이 112에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걸면 날 죽일 것만 같다.

집주소와 비밀번호. 아이가 다칠 것 같다고 들어와서 우리 좀 구해달라고.


잠시 뒤 벨이 울리고 잠옷을 입은 아이를 안고 기저귀 두장과 핸드폰만 든 채로 빠져나왔다.


새벽 두 시, 혹은 세시.

아이를 안은 채 친정집 초인종을 눌렀고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날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직 나는 남편과 아이와 살고 있다. 이혼하지도 않았다.


달라진 건 남편의 귀가가 늦어지는 날.

남편의 주사가 날 향할 것 같은 날. 나에게 편지를 써 보낸다. 이 편지들이 증거로 쓸 일이 없길 바라며.  오늘도 연락 없이 귀가하지 않는 날. 아무 일 없이 아침이 오기를 바라며 쓰고 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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