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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Aug 07. 2023

1.시작은 호캉스였다

주부에서 교사로

2019년 여름이었다. 모두들 어디론가 떠난다.

세부, 다낭, 괌...


아이가 4살인데 우린 그 흔한 동남아 리조트 조차 가보지 못했다. 결혼 기간의 해외여행은 신혼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남들은 아이가 유류할증료만 낼 때 해외를 3번은 가야 한다느니. 이런저런 얘기를 해댄다.

부럽다. 많이.


집으로 눈을 돌려보자.

남편혼자 외벌이 공무원이니, 이건 내가 가고 싶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더군다나 짠돌이라고 본인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닌가.

어찌 보면 돈보다 그냥 가기 싫은 마음이 더 커 보이는 건 내가 삐뚤어진 마음으로 봐서일까.


호캉스라도 가고 싶다. 아이가 어리니 콘도 같은 리조트가 낫겠지.

내가 매달 받는 생활비로는 성수기 콘도값과 식비, 워터파크비용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알바라도 할까? 대학원졸이라고 솔직히 밝히지 말고. 전문대졸이라고 하면 좀 쉽게 구해지려나.

남편은 교대근무라 아침에 없을 때도, 저녁에 없을 때도 있기에 9~6 정규직 일자리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10~4시 정도가 한계선. 40살 경단녀를 정규직으로  누가 뽑아주지도 않겠지만.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본다.

교원자격증 따놓은 것과, 20대 때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일했던 게 기억난다. 거의 20년 전 그땐 월급도 나쁘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경력이 너무 짧다. 기간제도 경력순으로 뽑는걸. 그럼 아무도 노리지 않는, 돈도 안되고 급하게 구하는 한 두 달짜리 애매한 기간제자리를 노려보자.


여름방학 전 한 달짜리 기간제 공고가 떴다!

물론 매우 멀다. 내가 사는 곳은 동부지역. 일반 교사들도 서부지역은 살지도, 근무를 희망하지도 않기에 서부지역은 기간제도 잘 지원하지 않지.

이런 건 면접이나 수업실연도 패스. 다음날부터 바로 일하자는 곳도 있다. 하루라도 담당자가 없이 굴러가는 건 모두가 원하지 않기 때문.


공고가 뜬 뒤 몇 시간 만에  이력서를 출력해서 학교로 방문했다. 교감선생님이 너무 좋아하신다. 누군가가 왔구나! 학교경력도 있구나! 만세!

속마음이 나에게도 들린다.

당장 일해야 한단다. 하루이틀 내로. 가능하다고 답했다. 담당자를 만나러 내려가본다.

나이가 나와 같은 미혼의 교사는 간병휴가를 쓴다고 한다. 모친이 암이라고 얘기하며..


기간제 경력도 일천하고, 경력단절도 너무 긴 나에게 별 조건 없이 바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비록 한 달이지만. 차츰 늘려가 보면 일 년, 이 년짜리 기간제교사 자리도 구할 수가 있겠지. 이 돈이면 올여름 호캉스 2박 3일도 갈 수 있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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