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착실한 누군가가 밟아간 길
주부에서 교사로
여름에 한 달 일하면서 두세 달 치 생활비를 벌어왔다.
애기가 좋아하는 수박을 제일 큰 걸로 사들고 퇴근했고, 호캉스도 다녀왔다. 물놀이도 하고 맛있는 밥과 커피도 돈걱정 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다.
잠깐의 단비가 지나가고. 겨울이 될 때까지 마땅한 일자리를 새로 찾지는 못했다. 단기 기간제 공고가 또 나면 좋으련만..
11월이 시작되고 얼마 뒤 교육청에 공고가 올라왔다. 겨울방학 때까지 기간제 교사가 필요하단다. 거의 두 달에 가까운 기간. 이력서를 뽑아 들고 몇 시간 만에 총알처럼 학교에 도착했다. 여기도 집과 끝과 끝 거리지만 일할 수 있다면야 감지덕지다.
어느 학교던지 교감선생님이 인사담당자다.
교무실로 가서 공고 보고 왔다고 하니 전화도 안 하고 와서 놀랬다면서 또 너무 좋아하신다.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자기~ 일할 사람 왔어. 걱정 말고 푹 쉬어. 몸조리만 신경 쓰고"
원래 있던 교사가 둘째 임신 중 조산위험으로 병가를 급하게 냈단다. 그래서 이렇게 공고가 급하게 났구나...
이번도 수업실연도 패스. 내일부터 바로 출근이다. 남편은 아침퇴근하는 날에만 육아시간 쓰고 나 출근하기 전까지 와주라고 했다. 이것도 안 되는 날엔 옆단지에 사는 친정부모님께 부탁하는 수밖에.
일하러 가서 자리에 앉아본다.
이전 교사의 자료를 열어서 업무를 한다.
얼굴은 못 봤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이구나.
와 이때 발령받았다고? 내가 사는 지역에 내 과목 교사를 일 년에 단 2명 뽑던 시기 아닌가.
극악의 경쟁률과 난이도를 뚫은 사람이구나.
원래 똑똑한가? 국립대 출신인가?
일도 너무 깔끔하게 한다. 규정이 많다 보니 어느 정도 가짜로 하는 업무까지 정석대로 다 지켜가며 할 능력이 되는 사람이다.
내가 쪼그라들고 있다.
한없이 작아진다.
부끄럽기도 하다.
대학교 갓 나와서 바늘구멍 경쟁률을 뚫고 한 번에 임용된 사람의 발자취를 1:1로 마주하고 있다.
난 교육대학원까지 가서 임용시험 3번이나 쳐봤는데. 물론 올인한 건 한 번이었지만.
어쨌든 1차도 붙어보지 못했다.
학비는 학비대로 날리고 평범하게 일하다가 결혼하며 전업이 된 내가 마주하기엔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다.
계약기간은 12월 말일까지.
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런저런 걸 찾다 보니 요새 임용시험은 한국사시험을 미리 쳐야 된단다.
그 한국사 시험이 한 달 뒤에 있단다.
무턱대고 접수하고 기출문제를 출력해 본다.
"나 왜 이러지?"
"나 교사가 되고 싶구나"
기간제교사 말고 진짜교사.
마지막 근무날. 원래 교사가 쓰던 볼펜을 한 자루 가져왔다.
"내 행운의 부적이 되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