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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인 한유화 Oct 17. 2024

혼삶을 설레게 하는 순간들

진정한 1인 가구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은?

“여행은 언제 시작되는가? 설레기 시작할 때.”
“사랑은 언제 시작되는가? 설레기 시작할 때.”


Youtube <LIFEPLUS TV>채널에서 최근에 시작한 ‘라플위클리 토크’ 시리즈를 즐겨본다. 이동진 평론가, 안현모, 궤도가 특정 키워드를 가지고 마인드맵을 그려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중 이런 내용을 언급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1인 가구의 진정한 시작도 설레기 시작할 때가 아닐까? 자신의 첫 공간을 꾸미는 순간, 자신의 돈으로 첫 생활용품을 구입하는 순간, 처음으로 혼자 잠드는 밤. 이처럼 1인 가구의 삶에서 설렘을 느끼는 다양한 첫 순간들은 독립적인 삶의 상징이자 시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1인 가구를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1인 가구로서의 삶이 시작될 때 가장 설레는 순간 중 하나는 자신만의 공간을 처음으로 꾸미는 과정일 것이다. 부모와 함께 살던 시절에는 그저 한 가족의 일부였던 공간이 이제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된다. 이때,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선택하며 본격적으로 '내 집'을 완성해 나가는 기쁨을 맛보면서 실질적인 1인 가구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침대부터 소파, 조명에 이르기까지,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자신만의 취향으로 채워나가는 과정은 큰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오늘의집’ 같은 쇼핑 플랫폼을 자기 전까지 몇 시간씩 들여다 보고 ‘장바주니’에 사고 싶은 물건을 가득가득 담아두는 경험, 여러가지 인테리어 요소들을 3D로 얹어서 내 공간의 모습을 시뮬레이션 해 볼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등 다소 유난스러울 정도의 그런 설렘, 1인 가구라면 많이들 공감하지 않을까.

그렇게 조금씩 꾸민 내 공간에 처음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순간이야말로 특별한 기억이 된다. ‘세대주’가 된 기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첫 ‘혼잠’의 기억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이었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혼자 자는 훈련’에 돌입했던 밤이다. 부모님과 함께 자던 익숙한 침대를 떠나, 내 방바닥 한가운데 마련된 작은 이불 위에 처음으로 홀로 누웠다. 일부러 ‘가운데 정렬’이라도 한 것처럼 내 몸이 방의 정가운데에 놓여있는 기분이 들어서, 함부로 그 정렬을 깨고 움직이면 안 될 것만 같은 마음에 자꾸만 더 경직되는 것 같았다.

나 빼고 나머지 가족들은 아직 잠들지 않은 것 같은데. 방 밖에서 도란도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무서움보다도 소외감이 조금 더 짙었던 그 밤의 고요함. 하지만 그 작은 방 안에서 느꼈던 고요함 속에 한편으로는 설렘도 있었다. 이 관문을 거쳐야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왠지 으쓱해지는 기분.

혼자 처음으로 자는 밤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각별하다. 1인 가구가 처음으로 독립된 공간에서 맞이하는 밤, 완전한 고요 속에서 혼자라는 사실이 다가오는 순간은 긴장감과 설렘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이제껏 익숙했던 가족의 소리나 집안의 생활 리듬이 사라지고, 오직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쩌면 이는 마치 나만의 작은 우주를 얻은 듯한 자유로움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동시에 그 자유로움은 곧 외로움과 맞닿아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첫 ‘혼잠’의 순간에 두려움이나 고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순간은 점차 편안함으로 바뀌어 간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하루를 보내고, 원하는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자유로움은 1인 가구의 특권 중 하나다.



첫 ‘내돈내산’의 기억
1인 가구로서의 삶에서 또 다른 중요한 첫 순간은 바로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경험이다. 독립된 삶을 살게 되면, 부모가 대신 준비해주던 모든 생활용품과 식료품을 직접 구매해야 하는 현실에 부딪힌다.

‘과일이 이렇게 비싼 거였구나’, ‘세제가 이렇게나 빨리 떨어지는 거였구나.’ 왜 엄마가 그렇게 휴지 아껴쓰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자취 시작 후 처음으로 공과금 청구서를 받았던 때를 기억하는가? ‘불 좀 끄고 다녀라’, ‘에어컨 켤 때는 창문 꼭 닫아라’ 같은 잔소리를 아무리 들어도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고쳐지지 않던 생활 습관들도 자동으로 고쳐질 수 밖에 없다.

세 청구서를 받았을 때 경민은 비로소 독립적인 생활의 시작을 실감했다. 청구서를 보고, 절약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설렘: 돈을 직접 관리하고, 비용을 통제하며 자립심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혼자 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와 닿기 시작한다.

혼삶의 일상에서 설레는 경험이 쌓이면, 말 그대로 일종의 ‘경험치’가 쌓인다. 연인과의 데이트나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충분히 설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하면, 그 작은 설렘들이 쌓여 1인 가구의 삶은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는 여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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