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전북독립영화제>에 필자가 제작한 단편 영화 <잊혀진 코코>가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관객들과 처음으로 만났다. 이 영화는 1인 가구와 가족주의라는 주제를 탐구하며, 현대 사회에서 '혼자 사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조명했다.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이렇게 물었다.
“혼자 사는 게 두렵지는 않나요?”
아마 많은 이들이 한 번쯤 해봤거나 들었을 법한 질문이었다.
정말 “결혼”으로 해결이 되나요?
"혼자 살면 늙어서 누가 돌봐줄 거야?", "아플 때 옆에 누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와 같은 질문들로 혼삶을 염려하는 시선들이 따뜻하기 보다는 폭력적일 때가 많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배우자가 늙었을 때 돌봐주기 위해’ 결혼을 선택할까.
근육통에 시달리다가 혼자서 힘겹게 등에 파스를 붙이는 순간에 ‘아, 파스를 붙여줄 배우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떠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결혼을 선택한 사유로 ‘파스 붙이기 어려울까봐’ 하는 점을 말하지는 않을 것 같다. 등이 가려운데 손이 닿지 않을 때, 효자손*이 아니라 배우자를 찾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가?
결혼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얼마나 현실적일까? 배우자가 모든 상황에서 완벽한 돌봄과 지원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종종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상적 불편함이 결혼의 필요성을 상징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문제는 도구, 기술 혹은 사회적 네트워크와 같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배우자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가족을 원하는 심리적인 갈망을 다른 명분으로 덮어씌운 것일 수 있고, 혹은 결혼을 과도하게 이상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결혼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면, 그 대안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각기 다른 형태의 관계 속에서 위안을 찾는다.
해결책은 ‘결혼’ 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
결혼은 한때 사회적 안정의 상징이자 필수적 삶의 방식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이제는 개인의 행복과 만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이며, 결혼은 그를 돕는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혼자’라는 상태가 두려운 이유는 관계의 결핍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그러나 그 관계가 반드시 결혼이라는 형태를 띠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이란 하나의 관계 모델일 뿐, 두려움을 해소할 방법은 그것 말고도 다양하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다. 어떤 이는 깊은 우정을 쌓아 삶의 의미를 찾고, 어떤 이는 지역 커뮤니티에서 소속감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마주하고 자신에게 맞는 관계의 형태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것이다. 이는 친구, 가족, 동료, 혹은 단순히 이웃과의 소소한 교류일 수도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소수의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디자인하며, 필요에 따라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선다. 최근 들어 급증하는 1인 가구는 이를 뒷받침한다. 셰어하우스나 코리빙(co-living) 같은 주거 형태는 공동체의 장점을 누리면서도 개인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대안이다. 공유 주방이나 공동체 활동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나누면서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존중한다.
결국 결혼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보편적 해결책이 아니라, 한 가지 선택지에 불과하다. 관계의 본질은 결혼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만드는 다양한 관계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결혼을 압박하는 사회적 메시지의 이면에는 혼삶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하지만 두려움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그다지 유용한 동기가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개인의 삶에 더욱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김상현 작가의 문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움직이는 것보다 먹는 게 많으면 살이 찌듯이 행동하지 않고 마음만 먹으니까 걱정이 찌는 거예요. 마음을 먹었으면 움직이세요, 걱정이 찌지 않게.
김상현 <그러니 바람아 불기만 하지 말고 이루어져라> 중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더욱 커진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결혼 여부가 아닌, ‘자신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핵심 질문이 될 것이다. “혼자 살면 두렵지 않냐”는 질문이 아니라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나만의 행복을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 우리의 삶을 이끌 때, 삶은 조금 더 풍요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효자손: 긴 막대기 형태의 등 긁는 도구, 대나무의 끝을 손가락처럼 구부리어 손이 미치지 아니하는 곳을 긁도록 만든 물건. (네이버 국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