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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Aug 29. 2022

하루 분량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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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없는 슬픔이 날아와 앉는 날이면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간다.

그러곤 평소에 가보지도 않던 잘 모르는 길을 하나 고른 뒤 한참을 달린다.

낯설고 익숙지 않은 길이 길어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이 기시감을 지닌 채 다가오는 데 아마 그건 희미한 어릴 적부터 함께 해 온 익숙한 불안이 비슷한 상황에서 드문드문 고개를 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이전보다 위태롭고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이끈 뒤 그 속에 나를 불안과 함께 풀어놔 둔다.

어디든 마음 닿는 곳에 내려 아무 길이나 걷기 시작한다.

기대 없이 걷기 시작한 길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언젠간 기찻길이었다던 길을 한참 걸으니 어느샌가 이름 모를 다리 앞까지 다다랐다.

다리 위를 걷는 내내 여름을 걷어낸 강한 바람이 불지만 그래서 더 생각지 않게 좋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머리칼을 휩쓰는 만큼 마음에 물결이 일어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어느덧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니 잿빛 구름이 쇠털같이 깔려있다.

재색의 파편들은 무수히 펼쳐진 채 하늘 한편을 다 채울 듯이 한참을 드리워져 있다.

그런, 찰나 같기도 영원 같기도  순간이 지나면 거대했던 티끌들은 점점 옅어지고 흐려져  어둠  어느 누구도 모르는 곳으로 몸을 감춘다. 아득히 오래 지속돼  쇠락의 순간이다. 지금 하루치만큼의 우주가 지고 있다. 나도  속에 혼연히 파고들어 어디론가 사라질 것을 잠시 꿈꾸지만 나는 이곳에 있다.

나와 나 아닌 것을 철저히 분리한 채로 세상은,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내일의 나는 결국 원래의 모습이겠지만 그래도 오늘의 나는 길을 잃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살아있고 싶다는 본능을 이렇게도 확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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