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JTBC에서 방영하는 <뭉쳐야 찬다2>가 그것인데, 비인기종목 선수 중 축구에 재능이 있는 선수를 선발하여 안정환 감독이 이끄는 어쩌다벤저스라는 팀을 결성하고 매주 강한 상대와 맞붙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어쩌다벤져스에 속한 선수들이 장기적인 부상을 겪기도 하고, 또 현역 선수들이 대회를 준비하거나 참여하는 일이 잦아 선수진에 공백이 발생하면서 선수를 보강하기 위한 2차 오디션이 있었다. 오디션을 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처음 보는 종목의 선수들이 나와서 실업팀이 없어 다른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번 뒤에 이렇게 번 사비로 어떻게 해서든 훈련에 참가한다는 사연들 때문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꿈꾸게 하는가. 꿈꾼다는 이유만으로 누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짐 지우는가. 참 먹먹했다.
최근 여러 가지 논란이 많았다. 넷플릭스에서 소년범죄를 다룬 웹드라마 <소년심판>이 개봉되면서 촉법소년의 연령 상한선을 낮추자는 사회적 의제가 대두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더 이상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및 장애인 권리예산 반영을 요구하기 위해 지하철역에서 시위를 이어나감에 따라 장애인의 시위를 둘러싼 견해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각각의 문제는 이 사회의 질서 확립을 둘러싼 중요한 부분이며 사람들마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차이와 균열이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들은 모두 국가의 업무 태만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사실상 국가가 국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개인에게 모든 걸 떠넘기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에게 그것이 비인기종목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적인 지원이 전무하여 개인이 돈을 들여 모든 훈련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과 같이, 이 나라의 많은 제도는 소수자에게 너무나 냉담하며 제도의 부재 혹은 부실 혹은 미이행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어른도 치를 떨 만큼의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촉법소년이라는 법적 지위를 악용하는 사례를 보면 나 역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연령 상한선을 낮춘다 하더라도 이들을 교화하고 지도할 소년원과 해당 인력의 규모가 너무나 부족한 상황에서 단지 더 많은 청소년을 재판하고 소년원에 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또한 인간의 기대수명이 100세가 된 지금, 청소년들이 형을 살고 나오더라도 이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기간이 훨씬 길다. 따라서 단순히 개인의 인성 문제, 개인의 범죄로 접근하여 벌 주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이들이 어린 나이에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를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살펴봐야 하며, 이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우리 사회에 교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봐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가 나서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일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말마따나 이 사회에 과연 구조적인 차별이 존재하지 않을까? 사기업의 대표, 공기업의 기관장들을 살펴보면 여성의 비율이 현저히 낮다. 그 많던 여성 신입 사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은 여성들이 모두 개인적인 능력 부족으로 승진에 실패했을까? 엄연히 존재하는 유리 장벽을 무시한 채 능력 부족이라는 개인의 서사로 돌리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적어도 국가는 개인이 부당한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도록 공정과 정의의 의미를 묻고 이를 실현해나가야 한다.
장애인들의 시위가 평범한 시민들의 출근길을 방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애인이 평범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다는 적극적인 의도를 가지고 자행한 일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민 불복종’이라는 개념이 있다. 시민 불복종이란 특정한 법률이나 정책이 올바르지 않다는 판단 하에, 정부에 대해 이의를 신청하는 행태인데, 종종 위법한 수단을 사용함으로서 사회 전체에 법률이나 정책의 정당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효과가 있다. 장애인들이 이렇게 시민들의 출근길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었을까? 사실 진작에 고려되었어야만 하는 장애인의 권리를 여전히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여 이렇게 최후의 통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국가의 잘못이 가장 크다.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누리며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해서 모든 개인은 사회계약의 당사자로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동의하였으며 국민으로서 나름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개인에게 응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나 무능력한 국가는 개인에게 응답하지 못하고 개인으로 하여금 모든 책임을 지고 기어이 행동하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든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꾸만 사람들은 ‘너 대체 왜 그래?’라고 묻기 마련이다. 그러나 더 이상 개인에게서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말고, 개인을 그렇게 만드는 사회를 뒤돌아 봐야 한다. 지금 우리의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나요? 응답하라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