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저격글이다. 나 속상했어요, 를 빙자한 저격글이므로 읽고서 찔려주시기들 바란다.
연애가 쉽지 않다. 이유인즉슨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점점 축소되는 데다가 나이를 먹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애초에 지니고 있는 생의 에너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고, 나부터도 주말에는 하루만 외출 약속을 잡을 정도로 몸을 사리기 때문에 그들을 저격하면서도, 공감할 수는 있다.
친구 박이 나를 가엽게 여기며 소개팅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자신의 입사동기 정과 내가 서로의 동성 친구를 소개해주면 될 것 같다고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분에게 내 친구 오를 소개해주었고 정은 오와 말 그대로 폴링인럽에 성공했다. 깨가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먹튀를 당한 것이 아닐까 꽤 진지하게 의심했다. 정이 오와 애프터, 삼프터를 거쳐 사귀는 사이가 되기까지 나는 일종의 스파이로서 오의 동태를 보고하였으며 정에게 오에 최적화된 매력 어필 방법을 전수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에게 정의 장점을 나열하며 설득에 꽤나 힘썼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오는 소개팅 기회는 0번. ? 이쯤되면 내가 n년째 연마하고 있는 기술인 원투바디훅을 날려야 하는 지경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언변능숙형형(ENFJ)! 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 왜? 남자가 씨가 말랐대?
결론적으로 말하면, 만나주기가 그렇게 힘드세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호구 조사를 하기도 전에 수원에 산다는 이유 만으로 모든 남자분들께 퇴짜를 받았더랬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자칭 종로구 명예시민으로서 왕복 4시간의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청계천에 출근도장을 찍으며, 한양의 문화와 도성을 흠모하여 몇시간이고 걸어다니는 나로서는 서울과 수원의 거리가 이토록 컸던 것일까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그냥 그런거다. 다들 먹고 살기도 힘들고 체력도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연애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요샛말로 디폴트가 된 게 아닐까. 연애에 대해 목을 매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연애에 에너지를 쏟을 생각이 없다는 거고, 연애에 크게 에너지를 쏟을 생각이 없다는 것은 조금 더 편한 조건의 상대가 아닌 이상 굳이 만나려들지 않겠다는 거고, 뭐 그런거다. 이해는 가면서도 참 씁쓸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것인데, 나라는 존재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거절했던 그들과 나는 당연히 인연이 아니었을 거다. 그래도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면, 인연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 지 전혀 알 수 없기에 조금의 호기심과 에너지를 발휘하여 인연을 만날 기회를 열어두는 것은 어떨까라는 아쉬움 정도?
어찌 되었건 간에, 연애란 이런 저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공동 작업이다. 거리가 가깝다고 해서 내가 사용할 에너지가 줄어드는 것도 아닐테고, 거리가 멀다고 해서 내가 사용할 에너지가 부족한 것도 아닐거다. 그냥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게 될 지 모르는 나의 인연, 나의 연인을 위하여 하루 정도는 조금은 만나줘도 괜찮잖아요!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