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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말함 Oct 29. 2022

평생소원이 누룽지

  얼마 전 아주 오래된 나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빈 적이 있다. 소원을 빌자고 제안한 건 나였는데 그 당시에 내가 마음속으로 빌었던 소원은 ‘지금 옆에 있는 얘랑 잘 됐으면 좋겠는데 아님 어쩔 수 없고요.’였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다. 내 옆에 있던 걔가 진짜로 소원을 빌긴 했는지, 그리고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영영 알 길이 없어졌다. 정말로 소원을 들어줄 만큼 신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나무 앞이라서 빌었던 소원은 아니었고, 달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분위기에 취해 지껄인 나름의 낭만이었다. 그래도 모처럼 빌어본 소원인데 아쉬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소원이라는 단어에 설레는 시기는 지난 것 같고 또 소원을 빌 만한 일도 딱히 없다고 느낀다. 어린 시절과 달리 소원에 시큰둥해진 시기는 대략적으로 돈을 벌면서부터다.  적지만 그래도 정기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갖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할 수 있다. 경제적인 여유와 능력에 힘입어 눈치 볼 일 없이 맛있는 걸 사 먹고 갖고 싶은 걸 주문하며 많은 것들을 돈을 들여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의 미덕은 속도감에 있지 않나. 내가 산 물품이 다음 날 배송되는 지금, 나의 소원은 돈을 지불하면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진다. 소원이 이루어지기까지 마음속에서 뭉근히 끓던 간절함은 배송을 기다리는 삭막한 초조함으로 바뀐 지 오래다.


  소원에 시큰둥해진 또 다른 이유는 인생에 있어 성취해야 할 일이 딱히 없다는 점이다. 나에게 소원이 있다면 매일 무탈하게 지내는 정도일 만큼 딱히 크게 바라는 것이 없다. 아마도 영달이나 사회적 성공과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진 데다가 우스갯소리로 스스로를 제일교포(제일 먼저 교감 포기의 줄임말)로 소개할 만큼 승진에 관심이 없다. 그나마 연애와 결혼이라는 희망사항은 있으나 운명론자에 가까운 나는 누군가가 나타나길 열렬히 바라며 액션을 취한다기보다 ‘인연이면 만날 것이오, 때가 되면 이루어질 것이다. 그치만 아님 말고.’ 식의 태도를 가졌다. 그러다 보니 간절히 소망하는 무언가가 부재하는 느낌이다. 매일 간절히 소망하는 게 있다면 아마도 칼퇴나 휴일이나 순 놀고 싶은 그런 것뿐. 그렇다 보니 내 평생의 소원은 정말 누룽지 정도인 셈이다.  


  핑클의 완전체 컴백으로 화제가 되었던 예능 프로그램인 캠핑 클럽에서 성유리는 이효리에게

“소원이 다 이루어지면 인생이 아니야, 언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소원들이 있었으면 바라보았다. 나의 소원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의 소원이 아니라면, 소원이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가 열심히 수영하며 더 건강해져서 나랑 여행 가서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동생이 아프지 말고 하고 싶은 운동을 원 없이 배웠으면 좋겠다. 내가 함께하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해서 배우고 싶었던 걸 배우고 경험하며 한층 더 자랐으면 좋겠다. 내가 사는 곳이 모든 구성원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포용적이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들이 그만 끝났으면 좋겠다. 지구가 빠른 시일 내로 멸망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우리의 터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만 매몰되어 내 욕심만 소원이 되는 편협한 사람이기보다 남을 위해서 소원들을 간절히 빌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면 인생이 아니라지만, 영영 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는 소원을 빌며 내가 속한 곳에서 희망을 찾아 나서야지. 그래서 평생소원이 나를 위해 누룽지를 먹는 게 아니라 내가 속한 이 세상을 향해 다양한 소원들을 오래오래 끓이고 애태우는 누룽지가 되어야지. 그래서 평생소원이 누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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