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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말함 Nov 19. 2022

잊지 않겠습니다, 잃지 않겠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며

  나는 오늘도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지만, 이태원에서 스러져간 158명의 운명조차 이런 형태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주짓수를 배우는데 상대와 스파링을 하다 보면 사이드를 잡힌 채로 가슴과 가슴을 맞대 압박을 가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체급이 큰 상대나 남자와 스파링을 하다 보면 온몸이 눌리는 순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다급히 탭을 치고 항복을 외친다. 그런데 그들은 탭조차 칠 수 없는, 살려달라고 소리 지를 수조차 없는 말도 안 되는 압박 아래서 숨을 쉴 수 없어 정말로 죽어버렸다.  


  참사 당일 저녁, 혼자서 동네를 산책하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여자애들을 보았다. 누가 봐도 이태원에 가는 듯한 행색을 한 여자애들은 재잘대며 서로의 옷차림을 만져주고 실컷 웃고 있었다. 혼자라도 가볼까 잠깐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부러워할 도리밖에 없던 나로서는 괜히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비싼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아껴먹으며 줌으로 우리 반 여자애의 대입 면접을 봐주었다. 너가 미리 면접을 좀 열심히 준비했더라면, 나 역시 재잘대며 이태원에 가고 있었을 거야, 생각했다. 사실은 이태원에 함께 갈 친구가 없었을 뿐인데 마음속으로는 자꾸만 우리 반 여자애를 원망하고 또 구박하고 싶었다. 그날따라 일찍 잠들고 또 늦게 일어났다. 일어나 보니 그렇게 할로윈 노래를 부르더니 기어이 이태원에 간 건 아니지? 걱정하는 카톡 메시지들이 한가득이었다. 여차하면 나도 저들 중 하나였겠구나, 그리고 그 여자애 덕분에 살아남았구나, 그런데 내가 봤던 여자애들은 과연 살아남았을까, 하는 생각에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멍했다.  


  할로윈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래서 독특한 차림새를 꾸미고 이태원으로 홍대로 놀러간다고 해서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고 외국의 행사만 따라 하려 드는 사대주의자들도 아니다. 내가 볼 때는 그냥 하루쯤 놀기 위한 핑계로 할로윈이 이용되는 셈이다. 그냥 그런 날일 뿐인데, 보통의 존재들이 그저 하루쯤 재미있고 싶었을 뿐인데,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우리의 곁을 떠났다.  


  안전에 대한 책임이 부재한 사회에서 우리는 자꾸만 일상 속에서 사람들을 잃고 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벌써 수차례 다짐했으나 여전히 바뀌지 않은 현실과 반복되는 참사 속에서 무기력해진다. 시답잖은 이유로 살아남은 것이 도리어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로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애써 추모하고 기억할 것이다. 일상 속에서 헛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 이상 사람을 잃지 않도록.



우리가 잃는 이들은 모두 우리의 일부가 돼. 초승달이 여전히 머무르듯이

무언가 달 같은 것이, 어둠이 자욱한 밤 조수의 힘에 의해 끌려오듯이.

-에밀리 디킨슨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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