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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말함 Feb 28. 2023

선물하는 일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건네는 일이 행복하다. 어떤 선물을 주면 가장 기뻐할지 고민하는 일은 상대방의 취향과 필요를 섬세하게 파악해야 성공률이 높다는 점에서 꽤 까다로운 데다가 상대방이 내 선물을 맘에 들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물을 주는 것이 기쁜 이유는, 내가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다는 무형의 마음을 가시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겨우내 나는 여기저기 놀러 다녔다. 특히 3년 만의 해외 여행지인 일본에 머물면서 꼭 (맛) 봐야 하는 것들과 꼭 사야 하는 것들 사이에서 신음하듯 일정을 소화했다. 특히 꼭 사야 하는 것들은 나의 욕망에 부응하는 것들도 있었지만 누군가를 자꾸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무릎 보호대를 보면 무릎 수술을 했던 내 아빠가, 목에 좋은 약을 보면 자주 기침을 하는 내 애인이, 복숭아 향이 난다는 립밤을 보면 화장품에 환장하는 내 친구가, 귀여운 피규어를 보면 피카츄에 환장하는 내 동료가 그렇게 아른거렸다. 이런 마음은 여행에 함께 한 내 동생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몇 번이나 쇼핑을 했고 여행 전날 초조한 마음으로 캐리어 무게를 재며 터질 듯한 가방을 싸맸다. 심지어 나랑 동생은 숙소 근처에 위치한 토끼 신사에 갔다가 신년 운세 쪽지를 밀봉한 토끼 모양의 자기를 4개나 샀는데 여행 후 각자의 애인과 신년 운세를 나누고자 깨지기 쉬운 토끼 1쌍을 각자의 속옷으로 칭칭 감아 캐리어에 넣어 다녔다는 것은 조금은 비밀이다.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조금 더 바빴다. 꾸역꾸역 사 온 선물들을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약속이 많아졌다. 그런데 짐을 쌀 때엔 풍성해 보였던 선물들이 막상 주려고 보니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다. ‘선물 줄 거 있다고 불러내놓고 겨우?’ 생각할까 봐 조금은 민망한 손으로 선물을 건네며 별거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한 친구가 내게 해 준 말이 참 따뜻했다. 이미 한 명 한 명 생각해서 선물을 골라서 가방 가득 가져와 준 것부터 별거 아니지 않다고, 원래 선물이란 누군가를 생각하고 고르는 순간과 시간도 함께 받는 거라고.


  바로 이런 마음을 주고 싶어 우리는 선물하는 것이 아닐까? 선물하는 일은 정말 선물 같은 일이다. 최근에 내가 받았던 선물이 무엇이었나. 선물에 담긴 시간과 애정을 가늠하며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사진은 내가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애인의 집에 몰래 숨기고 온 크리스마스 선물을 애인이 찍은 것이다. 선물을 어떻게 줄지 고민하면서도 많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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