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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Apr 24. 2024

작은 친구들 동물병원

아무개 씨의 의사들

최근에 본 동영상에서 강연자가 20~30대, 특히 온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일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강연자는 반려동물은 가족, 나아가 내가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존재들인데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무모하게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동의하는 바이다.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그 순간부터 남이 아닌 가족이 된다는 것.

그것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동물들도 아프면 병원에 간다.

아픈 사람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설명이 가능하지만 동물은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보호하는 이가 옆에서 주의를 기울여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언제 시작된 통증인지 어떤 상태인지 수의사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치료의 시기를 놓쳐 안타깝게 목숨을 잃거나 일이 커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나만 하더라도 다소 무심한 보호자여서 반려견 '미소'의 자궁축농증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급하게 동물병원으로 향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동물을 사랑하는 수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의 명함도 챙기지 못하고, 동물병원의 위치는 기억하는데 이제 그곳은 안경점으로 바뀌고 사라졌다. 

그래도 그 수의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전하고 같이 나누고 싶어서 글로 남긴다.

'미소'는 작고 성깔 있는 말티즈였고, 누군가 절에 버리고 간 것을 동네 슈퍼 아주머니가 맡게 되고 그 슈퍼에서 우리 집으로 오게 된 사연 있는 개였다. 새끼를 세 마리나 낳았던 날, 외삼촌이 소개해 준 동물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나는 그 옆에서 갓 태어난 새끼 세 마리를 얇은 거즈로 문질러가며 첫울음이 터지도록 도왔고 그때 작은 몸 위에 덮인 수술보, 그리고 마취된 채로 누워있는 미소를 보며 코끝도 찡했지만 동시에 저렇게 작은 존재를 수술하려면 참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술 과정을 지켜보지는 못하고 새끼들을 꺼낸 후에 들어간 거라 그때는 자세한 수의사의 수술 모습을 알 순 없었지만 막연하게 수의사는 정말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겠구나 했는데 몇 년이 지난 후 그런 분을 만나게 된 것이다.

외삼촌이 소개했던 그 동물병원은 집에서 너무 먼 거리라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을 검색해서 대학가 근처 작은 동물병원을 찾았고 배 아래쪽이 딱딱하게 부풀어 있는 미소를 데리고 그곳을 방문했던 날.

얇은 은테 안경을 끼고 백발의 머리카락을 단정히 빗어 넘긴 나이가 지긋한 수의사 선생님은 흰 가운을 입고 미소를 안고 들어오는 내 표정을 얼마간 쳐다보시고는 

"아이가 어디가 안 좋나요? 이름이 뭔가요? 하고 물으며 눈빛 만으로 나를 진정시켰다.

"미소예요. 날 때부터 키운 게 아니어서 나이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같이 산 지 8년 정도고, 배에 딱딱한 게 만져지고 막 핥고 그러다 어제는 소변에 피도 좀 나왔거든요."

수의사 선생님은 내 앞으로 걸어오셔서 미소를 살피고 청진기를 살짝 어딘가에 가져갔다 떼었다.

"미소~ 어디가 불편해? 내가 여기 좀 만질게. 어디 보자. 살살_ 만질거야."

진찰을 마친 후에 미소의 출산 여부, 먹는 양, 몇 가지 질문을 마친 후에 자궁축농증이라고 병명을 알려주시고 설명도 친절하게 해주셨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 나는 작은 입원실로 보이는 곳에 붕대를 감고 있는 고양이, 작은 새, 솜뭉치 같은 곳에 발만 내놓고 있는 고슴도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 아파서 치료 받고 이곳에 있는 아이들이겠지? 그런데 병원에는 의사 선생님 한 분 뿐이네.

그랬다. 병원을 혼자 운영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미소의 진료가 끝나고 수술 날짜를 잡으며 묻지 않아도 그곳에 왜 간호사나 돕는 이가 따로 없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냥 가요. 이건 빨리 발견하고 신속하게 수술해야 좋으니까 부모님께 말씀 드리고 꼭 그 날 오세요."

진료비도 안 받고 수술비도 비급여 항목이라 학생 입장에서 부담일 수 있으니 기본만 받겠다고 하는 그 말에. 이렇게 하시면 월세 내기도 빠듯하시겠다 하며 걱정이 앞서면서도 당시 휴학하고 학비를 벌던 내게 단 돈 얼마라도 아낄 수 있다는 말에 안심하는 마음이 더 컸다.

수술 당일, 우연히 미소의 제왕절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 막 태어난 새끼들 몸에 묻은 피나 이물질을 닦고 문질렀을 때 괜찮았냐고 물으시길래 아무렇지 않았다고 했더니 그럼 자신을 조금 도와줄 수 있냐 하셨다. 나는 그렇게 미소의 수술대 앞에 수의사 선생님과 마주보며 섰다.

수의사 선생님은 날이 바짝 선 수술칼로 밀린 털 사이로 보이는 미소의 배를 표시된 선 따라 가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이 놈이 못살게 굴었네."

스테인레스로 된 사각접시에 그 덩어리 같은 것을 올려두고 깨끗한 천으로 손을 한 번 닦은 다음 다시 어딘가를 살피시고 봉합할 준비를 하셨다. 나는 그 사이 침을 질질 흘리며 마취되어 있는 미소의 입가를 천으로 닦아주고 닦아낸 천들을 한 곳에 모아둔 뒤 수술대 옆 테이블에 사각접시를 옮겼다.

의사 선생님은 "보조 너무 잘해서 같이 일하자고 권하고 싶네요? 안 시켜도 뭐 필요한지 딱딱 알고."라며 웃으셨고 나는 내가 그럴 자격이 있다면 도와드리고 싶기도 했다. 

봉합된 부위에 소독약이 가득 발리고 그 위를 거즈로 감은 다음 미소가 깨어날 때까지 밖에서 차 한잔 마시자며 수의사 선생님이 나를 이끌었고 우리는 또 마주 앉아 선생님은 커피, 나는 율무차를 마셨다.

-내 딸도 서울에서 수의사 지금 인턴인데, 힘들다고 했는데도 고집 안 꺾고 기어이 하더라고.

가끔 분명 말하지 못하는데 아픈 곳을 치료해 주고 싶은 내 맘을 아는지 대화가 되는 것 같은 친구들이 있어서 그게 참 신기할 때가 있고. 또 좋아져서 가는 아이들 보면 나는 그게 또 너무 좋아서 계속 하게 되고.

말 편히 하시라고 한 뒤 수의사 선생님은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꺼내 놓으신 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부분을 내게 전했다. 의사의 마음. 치유.치료하여 병을 낫게 함. 그거 하나.

그 마음이 약자에게로 조금 더 향한다는 것. 그런 것들을 이야기 하셨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동일할 것인데 아파하는 존재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을 가진다는 게 참 멋진 일이라고 느꼈던 대화였다.

미소의 심장사상충 약 구입을 위해 몇 번 더 들러 갈 때마다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취업과 동시에 오랜 시간동안 가보지 못하다가 우리집 막내, 고양이 까미의 중성화 수술을 위해 다시 찾은 그곳은 안경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을 존경한다고, 여러 의미로 감사하다고 전하지도 못했는데 이별은 항상 급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걸 잊고 있었다. 선생님. 어디에 계시든 늘 따스함을 지닌 당신의 안녕을 제가 빌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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