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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23. 2021

개학 첫날

선생님이 얼마나 보고 싶었니?

분주한 개학날 아침. 

저마다 방학숙제와 준비물 꾸러미, 실내화 가방을 들고 학교에 오는 1학년 친구들.

아차! 앉았던 자리를 까먹었군요. 선생님도 그 아이의 자리를 까맣게 잊었습니다. 매월 자리를 바꾸어주다 보니 아이들도 선생님도 기억의 미로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때, 중심을 잡아주는 친구가 있어요.

"제 자리는 여기였어요."

그럼 여기저기서 "맞다. 내 자리는 여기!" "거기가 네 자리면 나는 여기겠다."

기억의 깃발을 꽂은 자리가 실마리가 되어 아이들은 줄줄 실타래를 풀어냅니다.


드디어 정리정돈이 끝나고 첫 시간

여름방학 지낸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들이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역시 가족과 놀러 갔던 경험이군요. 캠핑, 물놀이, 시골집에 갔던 일, 펜션에서 놀았던 일, 조개를 잡았던 일.... 물론 집에서 책을 읽었다는 친구도 있고, 근처 공원에서 놀았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식당에서 맛있는 걸 먹은 추억을 말하기도 하고요. 얼마나 맛있었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경험이 음식일까 그 맛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보고 싶었었는지 숫자 1부터 100까지 말해보라고 합니다. 1은 선생님이 하나도 안 보고 싶었던 것이고, 100은 하늘만큼 땅만큼 보고 싶었던 것이란 부연설명까지 해줍니다. 망설이는 아이들 틈으로 금방 "100이요." 거침없이 대답하는 친구들. 사랑을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런이런...


"51이요."

똘똘하고 재치가 많던 친구의 대답입니다. 아마 정직한 대답이었을 거예요. 100을 뚝 자르면 50인데 그 이하로 말하면 선생님이 속상해할까 봐 선심을 쓴 숫자 51. 보고 싶었는지 안 보고 싶었는지조차 생각을 안해본 친구에게 51이란 숫자는 직관적이고 솔직한 대답이지요. 금방 아이들이 반응합니다.

"왜 51이냐? 너는 선생님 안 보고 싶었냐?"

"51이면 보고 싶었다는 거지."

아이들이 설왕설래합니다.


그런데 장난기가 발동한 한 친구 큰 소리로

"0이요."

갑자기 아이들이 그 아이에게로 집중합니다.

"1에서 100인데 0 이래. 하하하" 

"0? 아휴! 선생님 속상하시겠다."

선생님이 정말 서운해할까 봐 먼저 얼굴이 붉어지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를 보면 마음이 얼마나 예쁜지 공감능력 100점인 친구들이죠.


"0은 반칙인데? 선생님 울고 싶어. 흑흑흑"

우는 듯한 표정을 과장해 지어줍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천이요." "만이요" "무한이요."

마구마구 터져 나옵니다.


1학년은 100까지의 숫자밖에 공부를 하지 않는데 이미 천과 만을 알고 있는 친구들.

부랴부랴 마감합니다.

"선생님도 너네들이 100만큼 보고 싶었단다. 이렇게 건강하게 등교해 주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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