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el Feb 16. 2023

타인의 삶을 소비하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생산하는

인생은 벤치마킹하는게 아니야

피하기 어려운 가장 큰 압박 중의 하나는 남들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괜찮아 보이는 삶의 조건들을 달성하기 위해 비교하며 탐구한다. 수요자가 많으면 공급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이렇게 했더니 잘되었다, 심지어는 인생이 바뀌었다는 식의 유튜브 동영상들은 넘쳐난다. 유튜브의 썸네일들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대놓고 과장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사실 많이 보게 만들기 위해 과장하는 것이 자신들의 컨텐츠 조회수를 올리는 가장 쉬운 기술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들을 탓하기만 할수는 없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과장된' 그것들을 '본다'. 이 '본다'는 뜻은 무엇일까. '배운다'라는 뜻이면 좋겠지만, '소비한다'는 것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삶에 대한 과장된 컨텐츠를 소비하면서 우리는 '학습'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오늘날 '브라우징(browsing)'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가장 흔히 착각하는 것은 브라우징을 지적 활동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의 삶에 대한 소비를 줄이고 자신의 삶을 생산하는 것. 그렇다면 '생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곁눈질을 줄이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것을 말하지 않을까. 곁눈질만 해서는 정작 자신의 삶에는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렷을 적 우리는 왜 그토록 위인전을 읽도록 강요받았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타인의 인생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나아지게 만든다는 전제는 일부는 맞을 수 있지만 그 '일부'가 생각보다 굉장히 미약할 가능성이 높다. 

Peter Fritz


작가의 이전글 편견과 편향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