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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el Dec 01. 2022

편견과 편향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나이가 들어가도 더 지혜로워지지 않는 슬픔에 대하여

나이를 먹어갈 수록 더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오랫동안 타인에게나 나 자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큰 착각 중의 하나였다. 오래 살았다는 것은 더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것과는 양적으로 어느 정도 상관 관계가 있지만 그 결과로 더 지혜롭다거나 뛰어나게 된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런 측면에서 전통의 힘도 크게 믿을 것은 아니다.(https://brunch.co.kr/@yoelsquare/27).


유명한 광고 카피라이터인 박웅현 작가의 카피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나이가 들어가도 그 나이에 구속받지 않고 청년처럼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음을 말하기 위함일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어가도 정말로 나이의 '양'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무식'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뜻할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편견과 편향에 대한 고착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물행동학의 대표적 학자인 로렌츠가 1935년에 오리와 거위 새끼에 관한 행동을 연구해서 발표한 '각인 학습'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것은 부화한 후 결정적인 시기에 낳아주거나 기른 부모 삶의 행동을 배운다는 것이다. 즉 오리가 태어나서 거위들 사이에서 자라면 오리가 스스로를 거위인 줄 알고, 거위의 행동 양식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조류의 각인 학습 행동이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사람들이 특정 편견과 편향에 노출되어 그것에 헌신하면 얼마나 큰 영향을 받으면서 살게 되는지를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가 가능하다.


먼발치에서 한국 사회를 보고 있으면, 편견들, 편향들간의 충돌이 과하다. 이성과 합리는 온데간데 없는 소모적 충돌, 냉소, 비웃음이 가득하다. 우리는 편견과 편향을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편견과 편향은 공기와 같다. 문제는 이 편견과 편향에 고착화될 때이다. 우리가 특정 편견과 편향을 선택할 때에는 말그대로 '선택'만 해야하는데 이것에다가 자존심을 걸고 시간을 '헌신'한다. 일단 자존심이 개입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실의 경중과 사실 여부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헌신'했기 때문에 무조건 이게 답이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틀을 깨고 반문하며 학습하지 않으면 나이들수록 더 바보가 되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보고싶은 것만보고 듣고싶은 것만 듣고 해석하고 싶은대로만 해석한다. 이 상태를 반복하게 되면 정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진다.


내면 안에 특정한 사고체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어떤 사고체계와도 토론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이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쿨하게 바꿀 수 있는 오픈 플랫폼, 열린 그릇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싶은 밤이다.


Sally D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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