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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A Dec 06. 2021

[기계문명과 예술, 그리고 사람]

KUA Conte #20 페르낭 레제 이야기 (Fernand Leger)

" 혜리야, 빨리 준비해! 미술관 예약 시간에 늦겠다.


오늘은 올해 열 네 살이 된 나의 딸, 혜리와 미술관에 가기로 한 날이다. 외출 준비로 분주한 나와 달리, 혜리는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 폰만 붙들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줄어서인지 예전보다 더 그 작은 화면으로 보는 세상에 빠져있는 듯 보인다. 내 말은 귓등으로 듣는지 미적미적 거리는 딸에게 다시 소리쳤다.


" 빨리 안 할래? 지하철 타고 가려면 지금 나가야 한다니까?


" 아 알겠어! 다 준비했다고. 봐봐, 옷 다 입었잖아!


" 그래그래, 알겠어. 그럼 빨리 나가자.


짜증을 내는 딸에게 어영부영 달래는 말들을 건네고, 서둘러 미술관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혜리는 지하철을 타자마자 또 핸드폰 화면을 켠다. 주위를 둘러보니 지하철에 탄 대부분의 사람이 스마트폰 화면에 빠져있다. 나 또한 그때그때 궁금한 것을 검색하는 일은 당연하고, 생필품을 구매하는 일부터  대부분의 회사 업무를 스마트폰으로 처리하곤 하지만 새삼 이질감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어디서 내려야 할지 관심도 없는, 옆에 있는 엄마조차 안중에 없는 딸에게 귓속말로 물어봤다.


" 혜리야, 스마트폰으로 뭘 그렇게 계속하는 거야?


" 이걸로 내일 제출할 숙제들 점검하고 있었어. 나 또 유튜브만 본 것 아니라고요~ 어머님~


맞다. 요즘은 수업 스케줄이나 진행 상황, 과제까지 학교 관련 내용은 모두 스마트폰 앱에 들어가 있다. 편하기도 하지만 내가 학교에 다니던 때와는 너무 다른 세상이다.


-이번 역은 광화문, 광화문역입니다.


미술관이 있는 역 이름이 들려왔다.


" 혜리야, 이번 역이야. 여기서 내려야 해. 오늘 전시 너도 좋아할 거야.


코로나로 인해, 그리고 요즘 쫓기듯 진행됐던 바쁜 업무로 예술작품감상에 오롯이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는데…. 게다가 딸과 함께하는 외출이다 보니 마음이 살짝 들떴다.


"아, 그거 미술관 앱으로 대충 들여다봤어. [기계문명과 예술, 그리고 사람]이라며?


관심이 전혀 없는 줄로만 알았더니, 딸은 나와 어떤 전시를 보는지를 미리 알아봤나 보다. 나는 요즘 세상에 젊다면 젊은 마흔 중반의 나이를 지나고 있지만, 딸처럼 발 빠르게 (이제 스마트폰으로 하니 ‘손 빠르게’ 라 표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보를 얻는 것은 참 익숙지 않다. 그저 예전처럼 사람을 만나 티켓을 받고, 곱게 디자인해 프린트된 전시설명서를 들여다보며 정보를 얻는 것이 편하다.


혜리와 이야기를 나누며 미술관에 도착하니, 평일임에도 기대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 혜리야,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꽤 많네. 오늘 도슨트 시간은 30분 뒤래.


" 엄마,  누가 도슨트를 들어. 요즘 음성으로 전시설명이 얼마나 잘 돼 있는데. 관심 없는 작품은 건너뛰기가 가능하거든요?


" 어휴. 알겠어.


딸의 성화에 음성 가이드를 하나씩 대여해 차고는 드디어 이번에 꼭 보고 싶었던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첫 작품을 보게 되었다. 조용한 전시관 안에서 혜리는 나즈막히  감탄사를 뱉으며 내게 말했다.


" 우와 엄마, 이거 진짜 멋지다. 기계로 만든 작품이야! 물고기 같기도 하고? 막살아 숨 쉬는 것 같아.


" 최우람이라는 작가의 “쿠스토스 카붐” 이라는 작품이네. 엄마도 처음 보는데 참 신기하다.

최우람, 구스토스카붐

 작품은 생소했다. 작은 기계 부품들로 이루어진, 세상에 있을 법한, 그렇지만 어디에도 없을 형체였다. 이를 이루는 부품 조각들은  하나의 생명체가 숨 쉬듯 어떠한 박자에 맞춰 천천히 움직였다. 나와 내 딸을 포함해 이 작품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이 모습이 기이한 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혜리 말처럼 숨 쉬는 것 같아서 기계인데 기계처럼 느껴지지 않네?


" 응 엄마, 어딘가 이런 생물이 있을 것만 같아.


기계 없이는 한순간도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지금의 세계 - 예를 들면 아까 지하철에서 보았듯이 스마트폰이 사람의 삶을 지배한 세계 같은- 가 떠올랐다. 이제 기계는 사람을 삶을 편하게 해주는 단순했던 목적에서 벗어나, 예술작품으로까지 진화되어 우리의 삶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최우람 작가의 쿠스토브카붐은 시작일 뿐, 이번 전시에는 현대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다. 전시를 통해 작품들을 하나하나 보고 경험하며 새삼 놀랍던 포인트는 작품들 바깥에도 존재했다.


기계로 만든 예술작품의 해설을,

음성 가이드라는 기계를 통해 듣고 이해하고,

그 작품을 기억하기 위해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로 사진을 찍어 남기는 행위.

전시의 주제 때문일까.


나와 혜리를 포함해 작품을 보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행하는 이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전시에서 가장 기대되었던페르낭 레제의 그림을 드디어 마주하게 되었다.

<페르낭 레제, 카드놀이하는 병사들 (Soldiers playing cards), 1917>


" 혜리야, 이 작품 좀 봐봐. 엄마가 실제로 너무 보고 싶던 그림이야.


" 음? 뭘 그린 것이지? 잠깐. 엄마. 지난번 보았던 피카소 그림의 느낌이 들기도 해.


" 하하하. 혜리가 엄마랑 미술관을 어렸을 때부터 다녀서인지 이제 척척 나오네? 맞아. 피카소 그림 같지? 우리 지난번 피카소 전시에서 봤던 <아비뇽의 처녀들> 기억나? 그 그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보기까지 했잖아.


" 응, 기억나! 피카소는 꼭 알아야 하는 작가라며 엄마가 검색해보라 나를 닦달했지.


지난번 혜리와 피카소 전을 다녀오면서 피카소의 그림이 ‘왜 저런 특색을 가졌을까?’를  혜리가 잘 이해했으면 좋겠다 싶어 함께 찾아본 적이 있다. 폴 세잔의 입체주의에 큰 영향을 받은 피카소는 자신의 그림을 사물을 평면에 펼쳐 큐브와 같이 각각의 조각으로 표현해냈다. 그런 표현법이 지금 보는 페르낭 레제의 그림과 언뜻 닮아있다.


" 그때 찾아봤던 폴 세잔 기억나지? 이 그림을 그린 페르낭 레제도 세잔의 영향을 크게 받았대. 그래서 피카소 그림과  비슷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 근데 좀 다르지?


" 응. 피카소의 그림은 모서리 같은, 각들이 도드라져 보였는데 이 작가의 작품은 어딘가 부드러워. 원과 원통이 보여서인가.


우연히 본 버스 정류장 광고판의 전시 홍보 포스터로 사용되어 이 전시를 오고 싶게 만들었던, 지금 눈앞에서 실제로 보는 페르낭 레제의 그림은 분명 딱딱한 부분이 있지만, 딸이 말한 것처럼 원과 원통을 사용해서인지 어딘가 유연하고 진취적 이어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 음성 가이드에서 그림과 작가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 1914년 8월,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페르낭 레제는 징집되어 전선에 배치됩니다. 그는 전선에 있는 동안 많은 스케치를 했고, 이후 실제 페인팅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카드 놀이하는 병사들은 그가 전쟁 후 파리에서 요양하는 동안 만들어졌습니다. 이 그림에서 레제는 입체파와 기계의 미학을 결합합니다. 군인들은 살과 피가 섞인 사람이 아니라 견고하고 기하학적인 모양과 강철로 단조 된 파이프 같은 팔을 가진 로봇처럼 보입니다. 반복되는 요소는 전쟁 기계를 연상시킵니다. 작은 영역과 큰 영역의 색상을 번갈아 가며 그림에 역동성을 부여합니다.

<페르낭 레제, 세 여인 (Three Women), 1921>


<페르낭 레제, 곡예사와 음악가들, 1945>


해설을 들은 후 페르낭 레제의 그림을 몇 점 더 감상하니 그의 그림이 왜 이 전시, [기계 문명과 예술, 그리고 사람]에 하이라이트 관에 있는지 이제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단순히 버스정류장 광고판에 눈에 띄는 그림에 사로잡혀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르낭 레제는 전쟁에 참여하면서 그 전투 현장에서 사람들의 강인함, 기계의 위력을 체험했다. 그는 기계적 특성인 원과 원통 (튜브)을 그만의 그림 표현 방식으로 발전 시켜 나가면서 기계들이 인간에게 제공하는 풍요롭고 윤택한 삶을 표현하고 싶었을는지 모른다. 이런 그림들은 당시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그림은 지금 우리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흔히 기계적인 사람, 

기계에 빠진 사람이라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마치 내가 이 전시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에 빠진 사람들을 이질적으로 바라본 것처럼, 

학교생활마저 기계가 만들어낸 서비스에 의존해야 하는 딸이 

조금은 측은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감정을 전할 때는 메신저보다는 편지를 선호하고, 

아직도 NFT 라는 무형의 것 보다는 

실제의 그림을 소장하는 것이 더 값어치 있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기계가 가져다주는 삶의 변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저 그림들을 그렸던 페르낭 레제의 시각처럼, 

기계와 함께 하는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법 아닐까.


심지어 지엔 기계가 예술의 매개체가 되는 세상 아닌가. 

이 전시를 오지 않았으면 

기계를 계속 이전과 똑같이 바라보는 나였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전시의 마지막 작품을 보고 난 후, 딸에게 말을 건넸다.


" 혜리야, 네가 음성 가이드를 대여하자고 해서 더 편하게 전시를 본 것 같아. 우리 딸, 고맙네.


" 엄마, 이번 전시에서 저 그림을 꼭 보고 싶었다며. 그림 옆에 서봐. 사람 없을 때 내 스마트폰으로 사진 한 장 찍어줄게!


" 그래, 고마워. 이렇게 남기면 나중에 두고두고 이 시간과 이때의 생각을 기억할 수 있겠다. 자 어때? 엄마 예쁘게 찍어줘!




⋇ 위 글은 프랑스의 화가, 페르낭 레제의 작품을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 KUA about  

    페르낭 레제(1881년 2월~ 1955년 8월) 는  프랑스의 화가이자 건축가, 조각가, 영화제작자로 그의 대표적인 그림 표현 스타일인 튜비즘(Tubism)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원래 건축가로 활동을 하였으나 1907년 폴 세잔의 회고전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후 아방가르드 미술가들과 친하게 지내며 피카소와 조르주 블라크의 입체주의 양식인 큐비즘(Cubism)을 접합니다. 이는 그의 대표적 작품 스타일인 튜비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튜비즘은 기계에서 영감을 받은 원통형 튜브와 원형을 다수 사용하는 표현법으로 페르낭 레제의 대표적인 화풍이며, 그는 자신을 튜비스트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에 프랑스군으로 동원되어 전선에서 2년을 보냈는데, 당시 군인과 노동자들의 강인함과 더불어 총과 대포와 같은 기계의 위력을 체험하고 이를 스케치하며 기계와 문명의 미에 매료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튜비즘을 만드는데 큰 바탕이 되었습니다.   


    페르낭 레제는 튜비즘을 이용한 기계적 형태의 그림에서 시적인 형상을 발견하고자 하였습니다. 기계적 요소를 단순하게 형식적으로 표현하는 원리가 아닌, 현실의 상을 이루는 표현법으로 채택하여 기계의 미의 부각과 기계 문명에 대한 긍정적 의미를 내포하고자 헀습니다.  


    그의 작품은 입체주의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를 튜비즘으로 발전시키며 기계문명의 찬양과 함께 노동자들의 세계를 담고자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그림 뿐만 아니라 책의 삽화, 기념비적 그림 및 벽화, 스테인 글라스 창문, 모자이크, 세라믹 조각품, 공연의 세트 및 의상 디자인이 있습니다.   


    1955년 그가 사망한 이후, 예술가로써의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으며 현재 프랑스 남부의 비오에는 레제의 작품만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이 있습니다 (Musée national Fernand Lé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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