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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twurf Jul 18. 2022

여름의 초복

오늘 새벽, 여름이가 죽었다.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글쎄, 예상했는지도. 아니, 예상하지 못했나? 친구들이 찾아왔다. 괜찮냐고 묻는 전화에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내 얼굴을 봐야겠다며 굳이 여기까지 왔다.


지루하다. 죽은 사람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사람은 언제나 전시되는 존재라지만, 죽으면 정말이지 어두운 전시회 장 안 홀로 남은 유리장 속의 전시품처럼 씹어지고, 깎아지고. 지겨워.


뜻밖의 소식에 어떤 조문객은 신발도 채 벗지 못하고 여름이를 보고는 울었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라는데, 여름이가 담임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나? 왜 저렇게 울지.


술자리에서 몇 번 봤던 여름이 친구들이 왔다. 열기 때문인지, 얼굴이 벌게져서는 구석에서 술을 홀짝인다. 잊고 싶은 걸까. 꿈이었으면 하는 걸까. 선명해지기는 커녕 흐려지기만 할 텐데.


새벽에 죽은 여름이 덕분에, 하필 아직도 맨 정신이다. 분명 네 감긴 눈동자를 본 지는 24시간이 꼬박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해가 중천에 떠있다.


우리는 땡볕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걸 좋아했다.

“내가 어제 달리다가 넘어졌거든. 여기 봐.”

여름이는 바지를 걷더니 아직 딱지가 채 나지 않은 상처를 보여주었다.

“진짜 아팠어. 말 한마디 못 나올 정도로. 그래서 가만히 앉아있었거든? 근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이렇게 무릎에 피가 난적이 언제였더라. 기껏해야 종이에 베이거나 밥 먹다가 입천장이나 데어봤지,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아닌가. 실룩실룩 웃음이 나더니, 아 나 살아있구나 싶은 거야."

“그게 뭐야, 너 살아있잖아.”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진짜 살아있는 거 말야. 막 새빨간 피가 철철..”

“윽 징그러워. 그만 그만”


해가 지면서 하늘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난 너의 무릎을 생각했다.


여름이는 견디지 못해 죽었다. 어느 시점인가 살아있다 보다는 살아지는 느낌이라서. 꽉꽉 막혀있는데 뒤에서 자꾸 미는 것만 같아서. 낭떠러지도 아닌데 한 발짝만 더 앞으로 가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해봤지. 술래라서 잠깐 뒤돌았다가 보면 막 성큼성큼. 그런 느낌이야. 뒤돌면 저만큼, 또 뒤돌면 이만큼, 그리고 어느샌가 내 그림자를 밟고 서있을 정도로 가까이 와있어. 난 뛸 준비도 못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름이를 꼭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말은 소용이 없었다. 물론 돌이켜보니, 안아주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무언가 헛도는 느낌이라고 했다. 자전거에서 발을 헛디뎌 페달에 발이 끼이는 것처럼 자꾸 뭐가 잘 안 된다고 했다. 언젠가 여름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여름이는 뱀파이어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난, 뱀파이어가 햇살을 받으면 몸이 불타는 것처럼 그렇게 해를 똑바로 보면서 홀랑 다 타서 죽었으면 좋겠어."


"우리 엄마는 나한테 가끔 그래. 왜 그렇게 쓸데없는 데 마음을 두냐고. 그러다가 갑자기 나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랬네 저랬네. 자존감 문제니, 남자가 없어서 그렇다느니."


난 여름이를 사랑했다.


"난 마흔 살이 되는 그 새해 첫날, 죽을 거야. 호주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다음에. 쪄 죽는 여름날의 크리스마스! 어때? 재밌을 것 같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듣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하지만 여름이의 얘기를 듣는  언제나 즐거웠다. 그게 죽는 얘기라도.


여름이는 마흔 살이 되기 훨씬 전인 오늘, 죽었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장에 누가 올까? 장례식장이 사람으로 미어터졌으면 좋겠어. 친하든 안 친하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 왔으면 좋겠는데. 엄마 아빠 부조금 많이 받아서 호강하라고."


여름이는 킥킥대면서 웃었다.


"근데 장례식장이 슬프면 싫을 것 같아. 그래도 마지막인데."


장례식장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슬퍼했다.


여름이는 초복인 오늘 죽었다. 하필 복날에.

여름날의 크리스마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더운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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