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twurf Feb 02. 2023

수염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헷갈려 했다. 누구랑? 가짜랑. 


어젯밤에 1년 동안의 파견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본가로 향했다. 택시에서부터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조금씩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를 만나자마자 안아드려야지. 오빠들은 … 인사면 충분하지.” 


그런데, 이게 웬걸. 집에는 이미 내가 있었다. 가짜 황경서가. 


가족들은 뜨악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잠시만요, 하며 방에 들어갔다. 거실에는 나와 가짜 황경서만 있었다. 그는 나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왜, 뭐요!”  

진짜배기는 난데, 자존심 싸움에서 질 수는 없지.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투혼까지 발휘했건만, 그만 눈이 시려 눈을 감아버렸다. 도플갱어는 눈을 마주치면 죽는다던데, 일단 그건 낭설임이  분명하군.  

“죄송하지만, 나가주세요.”  


하루아침에 가족과 집을 잃어버렸다. 처음에는 미친 사람처럼 며칠을 웃었다. 다음에는 불같 이 화가 나서 집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가짜 황경서를 졸졸 쫓아다니며 온갖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별안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갑게 식더니, 이성을 찾았다. 그래, 원인을  제거해야지. 결과물을 어찌하는 건 부질이 없어. 시간을 1년 전으로 돌려, 내 자취를 천천히 쫓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회사에서 매일 야근에 시달릴 때 말버릇처럼 했던 이야기가 있다. “몸이 열두 개라 도 모자르네. 내가 한 명 더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러나 옆자리 최기획관님께서도 밥 먹 듯이 이렇게 외치셨지만, 여전히 야근에 시달리시는 걸 보면 이게 원인은 아님이 분명하다. 

두 번째, 수능을 100일 남겨두고 공부를 할 때, 지나가는 말로 말했었다. “자는 시간이 이렇 게 아까워서야. 잘 때도 공부해 주고 머리에 남겨주는 그런 황경서2 없나.” 그러나 수능을 본  지 몇 년이 지나고 나서 이제야 또 다른 내가 나타나는건 무언가 이상했다. 파견을 떠나기  전, 그 며칠이 중요하단 말이지.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누구나 날 미친 사람으로 볼게 분명하기에, 혼자 끙끙 앓기를 며칠 째, 결국 최후의 보루를 선택했다. 바로 지식인. 

무려 내공 500을 걸고 질문을 올렸더니,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답글이 5개나 달렸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억울해하기도 잠시, 마지막 답글이 눈에 들어왔다.  


‘님, 혹시 손톱 깎고 아무 데나 버림?ㅋㅋ’  


아뿔싸! 파견 전날, 손발톱을 다듬었었는데 그게 화근이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퍼즐 조각이 딱딱 맞는 게 아니었는가. 본가에서 나던 유난히 꼬릿꼬릿 한 치즈냄새. 온 음식에 뿌려져있던 피자치즈. 라따뚜이 굿즈로 꽉 채워진 내(가짜 황경서)  방. 미키마우스를 숭배하는 듯한 재단. 벽에 뚫려있는 조그마한 구멍.


곧바로 친구의 반려묘를 데리고 본가로 향했다. 초인종을 눌렀더니, 가짜 황경서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한 손에 고양이를 들고. 

“머.. 뭐야. 고양이? 너 고양이 무서워하잖아.” 

“고양이쯤이야. 넌 톰앤제리도 안보니? 그러게 누가 손톱 깎고 아무렇게나 버리래? 네 업보 야. 여기까지 해. 이젠 내가 진짜니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현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그 수염을 봐 버렸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여름을 닮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