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를 보고/읽고
사회는 끊임없이 여성에 대한 프레임을 재생산한다. 이에 여성은 온갖 프레임으로부터 구속받는 피해자가 된다. 지난 시간 동안 여성은 전형적인 ‘여성성’, 예를 들어 조신함, 순결함, 과묵함, 수동성, 연약함 등의 이미지를 가질 것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여성은 이를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학습하고 내재화하였다. 시간이 지나, 페미니즘운동이 본격적으로 사회의 궤도로 들어온 이후, 점차 이러한 프레임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여성이 늘어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프레임은 유효하며 미디어는 이를 깨부수기는커녕 더욱 강화하고 있다. 심지어는 21세기에 들어, 여성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사회가 만든 프레임에 의해 대상화되고 있다. 유구하게 존재해왔던 수동적인 ‘여성성’에 더불어, 새롭게 등장한 ‘쿨한 여성’이라고 불리는 이미지로 말이다. 언뜻 ‘쿨한 여성’은 기존의 여성성과는 대비되는 것으로, 칭찬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여성을 다시금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여기에 전면으로 도전하는 작품이 있다. 바로 영화 ‘나를 찾아줘’이다.
2014년 10월 개봉한 영화 ‘나를 찾아줘’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 에이미의 남편 닉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어딘가 섬뜩하게 들린다.
“아내를 생각하면 항상 그녀의 머리가 떠올라. 그 예쁜 두개골을 박살 내고 뇌를 꺼내서 대답을 찾는 상상을 하지. 부부간의 기본적인 궁금증들, ‘무슨 생각 해?’ ‘기분은 좀 어때?’ ‘우리가 왜 이렇게 됐지?’”
닉과 에이미는 결혼한 지 5년이 된 부부로, 5주년 결혼기념일 날 주인공 에이미가 사라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에이미는 ‘Amazing Amy’라는 베스트셀러 책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 에이미의 부모님은 그와 똑같은 모습을 한 에이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쓴다. 에이미가 자라면서 책의 주인공 에이미 역시 성장하고, 이에 맞추어 책이 시리즈별로 계속 출간된다. 소설 속 에이미는 주인공 에이미가 잘 해내지 못한 것들을 해내는 천재이며 모든 면에서 에이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인물로 묘사된다. 에이미는 아름다운 외모와 하버드대학이라는 대단한 학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소설 속 에이미와 비교당하면서 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심지어 부모님은 에이미보다 ‘Amazing Amy’의 에이미를 더 애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던 중 닉을 만나게 되고 에이미는 그가 자신의 구원자라고 생각하며 사랑을 시작하고, 결국 결혼을 하게 된다.
영화의 중반까지 에이미의 실종은 닉과 관련이 된 듯 보인다. 형사가 에이미에 관해 묻자 대답을 어려워하며, 에이미의 실종과 관련된 캠페인 장소에서 웃어달라는 기자의 말에 미소를 짓는다거나, 몰래 1년 반 동안 바람을 피운 20대 초반의 제자와 집에서 성관계를 맺는다. 아내가 실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활을 하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듯한 닉의 모습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중반부를 넘어, 에이미의 이야기가 시작될 때이다.
모든 여자는 쿨한 여자가 되어야 했다
에이미는 실종되지 않았다. 아니, 그는 스스로 실종을 택했다. 그리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그는 범죄 다큐멘터리와 책을 읽으면서, 닉이 자신을 살해하고 숨겼다는 의심을 받아 감옥에 갈 수 있게끔 완벽한 스토리를 구상한다. 실종 당일, 닉이 집을 비운 틈을 타서 자신의 피를 쏟아붓고, 집을 어지럽히고, 일기장과 흉기를 숨기는 등 철저하게 가짜 살해 현장을 꾸미고 집을 떠난다. 에이미가 집을 떠나 내래이션으로 독백을 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한다. 이 부분은 책의 구절을 대신해 인용한다.
“그날 밤 브루클린의 파티에서 나는 당시 유행하던 여자, 닉이 원하는 여자를 연기하고 있었다. ‘쿨한 여자’ 남자들은 이것을 언제나 최고의 찬사처럼 말한다. 쿨한 여자는 섹시하고, 똑똑하고, 재미있는 여자라는 뜻이다. 그녀는 축구와 포커, 지저분한 농담, 트림을 좋아하고, 비디오 게임을 하며, 싸구려 맥주를 마시고, 스리섬과 항문 섹스를 좋아하며, 핫도그와 햄버거를 입 속에 쑤녀 넣으면서도 어찌 된 일인지 사이즈 2를 유지하는 여자다. 무엇보다도 쿨한 여자는 섹시해야 하니까. 쿨한 여자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다. 화가 나도 사랑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남자가 뭐든 자기 멋대로 하게 내버려둔다. 마음대로 해. 날 무시해도 괜찮아, 나는 쿨한 여자니까. (중략) 나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추세가 역전되어 남자들이 제인 오스틴을 읽기 시작하고, 뜨개질을 배우며, <코스모폴리탄>을 즐겨 읽는 척하고 스크랩북 파티를 주최해 자기들끼리 잘 지내는 동안, 우리 여자들이 음흉하게 지켜보다 ‘그래, 그는 쿨한 남자야’라고 말하는 날이 오기를.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중략) 모든 여자는 쿨한 여자가 되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그녀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중략) 그들은 당신이 쿨한 여자인 것처럼 말하면서 당신이 그들의 요구에 굴복하도록 만든다. … 마침내 당신의 진실한 자아를 당신의 배우자이자 소울메이트에게 보여줬더니 그가 당신을 싫어한다. 그렇게 처음으로 증오가 싹텄다.”
에이미는 닉이 원하던 ‘쿨한 여성’으로서의 모습이 거짓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지쳐, 닉에게 점차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그가 변하는 모습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하며 사건을 꾸미게 된 계기를 설명한다. 영화에서 닉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능력하지만 자존심만 센 모습을 보여준다. 닉은 자신의 제자 앤디와 바람을 피우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앤디가)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 말, 그 단순함이었다. (중략) 진짜 사랑은 남자가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살도록 허락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에이미의 편에 서서 닉의 몰락을 바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에이미의 잠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길 바라고, 닉은 살인죄로 감옥에 가길, 아니 에이미의 바람처럼 사형선고를 받기를 기대한다. 그때, 다시 반전이 일어난다.
에이미는 잠적하던 중, 강도를 당하게 되어 무일푼 신세가 된다. 그래서 대학교 시절 사귀던 남자친구 데시에게 연락을 해 그의 별장에서 지내게 된다. 그는 에이미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그 역시 에이미에게 ‘옛날처럼 예쁜 에이미’의 모습을 운운하는 등 닉처럼 ‘전형적인 남성’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그때, 에이미는 닉에게 다시 돌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데시의 퇴근에 맞춰 그가 바라는 ‘예쁘고 상냥한’ 모습을 한 에이미는 그를 유혹하면서 커터칼로 그의 목을 베어 살해한다. 그리고 이 역시, 데시에게 강간을 당해 정당방위로 살해한 것으로 사건을 위장한다. 그리고 닉에게 돌아가 자신의 실종사건을 데시에게 납치를 당한 것으로 완벽하게 서사를 만든 후, 다시금 닉과의 결혼생활을 이어가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난 포기를 몰라, 난 그런 년이야
스릴러 영화에서 잔혹한 살인자의 역할은 언제나 남성의 것이었으며 여성은 중요한 역할을 채 하지도 못하는 피해자로 그려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영화 내내 에이미는 ‘사이코, 대단한 여자’, 그리고 심지어는 ‘신’으로도 불린다. 닉이 수사망을 결코 빠져나갈 수 없게 살해 현장을 꾸미고, 데시마저 자신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로 이용한다. 에이미는 흔한 스릴러 영화에 나오는 사이코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의 촘촘한 서사와 행동을 보고 있자면, 어디선가 짜릿함이 느껴진다. 자신을 물건 취급하는 한심한 남편에게 이토록 잔혹하고 통쾌한 선물을 선사하다니. 한 관객은 에이미가 데시를 살해한 후 묻은 피를 닦기 위해 샤워를 하는 장면을 보고 ‘여성 주인공이 샤워할 때 흐르는 피가 남의 것이라니, 이 얼마나 신선한가’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와 원작이 되는 소설을 쓴 작가 ‘길리언 플린’은 온갖 선과 지혜의 원천으로 묘사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전복시키고 여자도 얼마든지 폭력적이고 공격적이며 잔인해질 수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모두 무능력하게 그려진다. 반면,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닉의 여동생, 언론에서 닉을 고발하는 MC들은 모두 여성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형사는 이성적인 모습을 유지하며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반면, 그를 돕는 남자 경찰이나 여타 남자 형사들은 감정에 치우쳐 제대로 사건을 조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닉의 여동생은 닉을 믿으면서도 믿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심화시키며 언론에 등장하는 MC들 역시 기존에 여성이 영화에서 소비되어 왔던 모습을 배격하고 있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닉은 에이미를 벽에 밀치며 위협하려 든다. 그러나 에이미는 말한다.
“난 포기를 몰라. 난 그런 년이야. 난 당신을 위해 살인도 했어. 이런 여자가 어딨어? 착각하지 마. 넌 나랑 있어야 행복해.”
전통적으로 뒤틀린 부부관계를 묘사할 때, 여성은 피해자로 그려진다. 남편이 아내를 자신의 지배 아래에 두고 꼭두각시처럼 조종하거나 폭력을 일삼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에이미가 닉에게 자신은 해칠 생각이 없다면서 그를 안심시키고 그를 자신의 지배 아래에 둔다. 이는 기존의 부부관계가 완전히 전복된 모습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 나왔던 닉의 내레이션이 반복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하지만, 이번에 그의 내레이션은 어딘가 두려움에 질린 듯 들린다.
더 이상 에이미는 ‘쿨한 여자’가 아니다. 또한, 소설 ‘Amazing Amy’에서 그려지는 완벽한 에이미는 더더욱 아니다. 누군가가 기대하는 이미지를 한 에이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잔혹한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여성은 사회에서 강요하는 정형화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또한 원하는 바를 어떠한 행동을 해서라도 얻어낼 수 있다. 광기어린 에이미의 모습은 기존의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이자 도전이고, 이는 완벽한 여성 서사를 만들어냈다. 에이미의 말처럼, 여성은 포기를 모른다. 여성은 그런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