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Feb 09. 2023

아끼면 x된다

그렇다고 안 아껴도 큰일납니다.

나는 살면서 엄마만큼의 짠순이를 만난 적이 없다. 물론 세상은 넓기에 아마 우리 엄마보다도 더 지독하게 아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연애 하면서 변화한 내 모습(가제) 시리즈에 왜 대뜸 엄마 성향을 첫 문장으로 썼냐 하면, 바뀌기 전의 내 모습이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말이다.


우리집은 전형적인 중산층 집안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기 전까지 아버지 혼자서 일 하시고, 먹고 살만치는 벌지만 그렇다고해서 비싼 명품 브랜드 물건 하나 턱턱 사거나, 일년에 한 번씩 해외여행 가기에는 어려운 정도.


나는 엄마 입에서 항상 "돈 없어" 라는 말 밖에 듣지를 못해 우리집이 정말 뼈빠지게 가난한 집안인 줄 알았다. 친구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마법소녀 장난감 하나 사달라고 할 때도, 과자 한 봉지 사달라고 할 때도 엄마는 돈이 없다고, 이런 게 왜 필요하냐며 사주시지 않았다. 친구들이 휠리스를 타면서 멀리 나아갈 때 나는 뛰어다녔고, 용돈을 받은 친구들이 시내로 놀러나간다 할 때 나는 같이 가지 못 했다. 친구들이 그들만의 문화 놀이를 형성할 때, 나 혼자 끼지 못 했다.


그 당시 200원이던, 할인해서 160원인 쫀쪼니 콜라맛 하나 못 사먹을 정도로 가난한 가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커가면서 돈의 가치와 아빠가 대강 어느 정도의 월급을 받으시는지도 알게 되고, 다른 친구들의 집안 이야기도 들어보면서 우리 집이 '내가 생각하는 정도'로 가난한 집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장난감은 그렇다 쳐도, 그 때 당시 500원 하던 과자 한 봉지 산다고 해서 우리집이 와르르 무너질 만큼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그랬지만, 나이가 든 지금에서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7남매 중 둘 째이며 차녀로 태어난 우리 엄마는 초등학생 때 모든 성적표에서 수와 우를 받았다. 하지만 밑으로 어린 다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 더 이상의 학업은 중단하셔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 외할아버지인, 엄마의 아빠 되는 분이 그다지 돈을 많이 벌지도 못 하셨고, 탕진하시는 데에만 능하셨기 때문이었다.


뼈 빠지게 가난했다는 말을 엄마는 어렸을 때 겪으셨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직접 돈을 벌고 돈을 만지게 되면서 자신의 가족을 이렇게 힘들게 살게 하지 않으려는 다짐을 하셨을 것이다. 그런 투철한 절약정신 덕분에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서 살 수 있었고, 밥을 굶지 않았으며, 추운 날에는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나 역시 나름대로 절약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아낀다고 해서 내 어렸을 적의 기억이 모두 행복했던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남들이 보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의 내가, 당시 좁은 사회 내 친구가 전부였던 그 시기의 내가 느꼈던 공허함은 지극히 사실이다. 행복은 상대적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엄마의 성격을 선천적으로도, 후천적으로도 물려받았는지 나 역시 꽤나 돈 쓰는 것에 인색했다. 차라리 돈만 그랬으면 다행인데, 돈 뿐만 아니라 다른 무형의 가치에서도 인색한 사람이 되었다.


중학생 시절, 다른 학교에 다 있는 급식실이 우리 학교에만 없어 2학년 초반까지는 계속 도시락을 싸들고 다녀야 했다. 평소에는 집에서 먹던 김치나 멸치 볶음, 나물 등의 밑반찬만을 싸오다가, 아주 가끔 엄마가 맛있게 먹으라면서 치킨 너겟을 싸주실 때가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벌어졌다. 대개 중학생들이 그러하듯 점심을 먹을 시간이면 친한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밥을 먹는데, 서로 싸온 반찬을 한 두개씩 바꿔 먹곤 했다. 그런데 나는 이 맛있는 치킨 너겟을 먹는 게 워낙 드문 일이라 나눠 주기가 싫었던 것이다(물론 내가 친구 것도 안 먹고 말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와 맛있겠다!" 하면서 하나씩 너겟들을 가져갈 때 내 표정이 굳어진 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같이 밥을 먹었던 친구들 중 한 명이 그때 내 모습은 정말 별로였다고 얘기했다.


다행히 그때 들었던 원색적인 비판에 머리를 크게 얻어맞고서 내가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조차 생활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으며, 사람이 꽁꽁 싸매고 있지 말고 조금은 나눌 줄도 알아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덜어내어 남에게 주는 데에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정작 '나'를 위해 쓰는 건 아깝다 생각해 아끼고 살았다. 조금 더 가격을 지불하고 좋은 걸 사는 것 보다, 무조건 저렴하고 싼 걸로 구매했다. 고등학생 때야 그럴 수 있겠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나를 위한 작고 비싼 선물 하나 마련하지 못 했다.




이는 이후 연애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당시 휴학을 하고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직접 벌던 시기에 역시나 돈 쓰기에 인색한 나는 데이트를 할 때도 문제가 되었다. 이제는 치킨 너겟 사건처럼 직접적으로 불편한 기색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속으로 곪았다.


그 때 당시 사귀었던 연인은 다소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었다. 저렴한 무한리필 고기집도 잘 따라다녔지만, 둘이서 5만원이 훌쩍 넘게 나오는 고기집을 조금 더 선호했다. 대학생이라 스스로 작고 소중한 알바비를 벌어 모두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가격대가 조금 있는 가게를 갈 때는 내색은 안 했지만 항상 불안했다. (그때 당시 연인은 같은 대학생이었고,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생활했다)


너무 비싼 거 아닐까?
연인이 이 정도의 가격대 음식을 사줬으니 나도 다음 번에 이 만큼 사줘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굳이 이렇게 비싼 곳에 오고 싶지 않은데..


이후 시간은 흘러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사리 직장을 구했다. 여전히 작고 소중한 정도의 금액이긴 해도 알바비보다는 많아진 월급으로 조금은 비싼 것도 사먹을 법 했지만 나는 여전히 아깝단 생각 밖에 하지 못 했다. 아니, 꼭 생각 뿐만이 아니라 직장을 구하게 되면서부터 부모님이 내주시던 보험비도 전부 내가 내게 되는 등 오히려 더 지출이 많아졌을 것이다. 반면에 상대방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구직 생각 없이 부모님 용돈을 받으며 집에서 게임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여전히 종종 비싼 음식을 먹자고 했다. 돈 많은 백수 같은 생활이 부럽기도 했으며, 나와 다른 생활 방식과 패턴 등에 큰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와 경제적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나는 '쓸 때'와 '아낄 때'를 잘 구분하지 못 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잘 생각해보면, 연인과 만날 때마다 매번 비싼 걸 먹으러 가진 않았다. 어쩌다 한 번, 많아봤자 한 달에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였는데, 쓰는 게 무서웠던 난 이 마저도 지레 겁을 먹고 맘 편히 큰 돈을 지불하고 온전하게 가치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만난 지금의 연인은 역시 나와 다르게 쓸 때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비교해보고, 가격이 조금 더 나가더라도 좋아보이는 걸 구매했다.


이렇게 막 쓰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들과 맛있는 밥도 먹으러 가기도 하고(우리 엄마는 사준대도 싫대서 가족 외식이 거의 없다)이유 없이 그냥 주고 싶다면서 선물을 사주고 하는 연인의 모습이 내 눈에는 대단해보였다. 상대방에게 필요해 보여서 본인이 사주고 싶다면, 그 물건의 가격은 신경쓰지 않고 사줄 수 있는 건 당연하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나에게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을 사준 게 아니었을까. "조금 비싸네"라고 생각은 할 수 있어도, "아깝다"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연인이 받은 월급을 펑펑 쓰기만 하는가? 절대 아니다. 쿠폰 같은 건 나보다도 더 열심히 찍고, 할인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 최대한 저렴하게 사려 한다. 적금이나 예금 이율이 높은 게 있으면 공유도 한다. 일할 때 서서 일하는 직종이다보니 토스 만보기를 매번 채우면서 까먹지 않고 꼬박꼬박 포인트를 받고 있다.


나는 항상 '돈', '소비'라는 녀석들한테 겁에 질려 있었기에 항상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으며, 이는 아마 알게 모르게 나의 사회생활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대학생 시절 친구들이 가끔 비싼 돈 내면서 뭐 먹으러 가자고 할 때 다음을 기약하자고 한 적도 몇 번 있던 기억이 난다. 돈 아끼겠다고 수업 끝나면 바로 집에 갔던 적도 많았다. 앞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고 배웠던 남에게 나누어 주는 행위는, 내가 이미 가진 것들 중에서 일부를 덜어내어 나눠주는 것 뿐이었지 정작 마음을 담아 통 큰 소비를 해본 경험은 없었던 것이다.


아끼는 것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것이지, 필요한 것에도 쓰지 않고 싸매는 것이 아니었다.


연인은 금액과는 상관 없이 내가 단순히 "귀엽다", "예쁘다"라고 하면 "사줄까?"라고 말을 한다.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건 뭐든 해주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그냥 한 말이라고, 뭘 이런 걸 사냐면서 아끼라고 한사코 말린다. 그럼에도 가끔은 선물을 받기도 한다. 너무너무 귀여운 6,900원짜리 그립톡을 내 돈으로 살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사줄게 하면서 먼저 지갑을 열고 구매하여 선물로 주는 것이다.


6,900원 그립톡


이 선물해준 그립톡은 본인이 쓰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보기에 그다지 실용성 없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연인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런 모습을 계속해서 보게되니 "사달라고 해야지"가 아니라, "나도 사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오늘 먹은 음식값이 평소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내가 사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거침없이 카드를 긁게 되었다. 고맙다고, 잘 먹었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 연인이 빵을 좋아하다보니 베이커리 카페 같은 곳을 가게 되면 한두개씩 더 구매해서 선물해주곤 한다. 밥 사주는 것보다 빵 사줄 때가 기분이 더 좋아보이긴 하는데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는 걸 나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짠순이 엄마에게도 권유하게 되었다. 연인과 카페 데이트를 하면 집에 계실 엄마아빠를 위해 간식을 추가로 구매해서 포장해갔다. 예전부터 돈 아깝게 이런 걸 왜 사오냐고 잔소리를 하셔서 매번 빈 손으로 집에 왔지만, 이제는 이런 상황 한정 불효녀로 전직하여 말을 안 듣기로 했다. 매 번 이렇게 사먹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돈 좀 써서 먹는다고해서 우리가 길거리에 나앉았으면 진작 나앉았어야 된다고, 그리고 그렇게 아껴서 다 쓰지도 못한 돈 관에 들고 갈거냐고, 쓸 때는 쓰자고 얘기한다. 물론 엄마도 내 말을 안 들으신다. 그래도 억지로 손에 쥐어드리니 조금은 받으시는 듯 하다.


그렇게 또 조금씩 변했다.

작가의 이전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