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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May 02. 2023

친구의 결혼식

아침드라마 같은 제목이지만 그런 내용은 아닙니다

며칠 전, 친구의 결혼식 장에 다녀왔다.


사실 이 날은 이상하게도 모든 일이 좋지 않았다.


언니한테서 결혼식장 가서 입을 예쁜 옷을 빌렸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입지 못 했다. (얇은 반팔 원피스라 추웠다) 또, 새로 산 신발이 빗물에 닿는 게 아까워서 따로 들고 가느라 가방에, 신발에, 우산에 짐이 두 배였다.


가기 전에 미용실을 예약했는데 역시나 비 때문에 가뜩이나 직모에 얇은 나의 머리칼은 드라이의 열을 모두 풀어버렸다. 미용사분이 "절대 머리에 빗물을 묻혀선 안돼!"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이 저주받은 머리는 물을 안 묻혔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분명 내 발에 딱 맞았던 신발은 막상 식장에서 신고 걸으니 헐거웠다.


이 날의 주인공은 나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여서 벌써 10년도 더 넘게 알고 지낸 친구다. 몇 년만 더 있으면 모르는 세월보다 알고 지낸 세월이 많을 정도. 일단 이 친구는 내 어려운 시절을 도와준 친구였기에,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 0순위인 친구였다.


축의금을 얼마 줘야 하나 고민을 좀 많이 했는데,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부담될까 봐) 어차피 이 친구에게는 전혀 아깝단 생각이 들지 않아 크게 넣어주고 왔다. 편지랑 돈이랑 같이 주려고 편지지를 샀는데, 편지봉투에 돈이 안 들어가서 집에 있는 색깔 A4용지를 활용해 야매로 만들었다... 조잡 그 자체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신부 측 친/지인들 중에서 일단 중학교 2학년 친구는 나 하나뿐이었고,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아마 다른 반이었던 중3 혹은 고등학교 친구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식장에 나 혼자 갈 뻔했는데, 다행히도 친구랑 남친이랑 다 같이 얼굴 몇 번 본 사이여서 남친이랑 같이 참석했다. 나 따라온 건데 남친도 고맙게 축의금을 넣어줬다.


신부대기실에서 친구를 보는데, 원래도 예뻤지만 역시 오늘은 더 예쁘더라. 긴장된다는 사람치고 밝게 웃고 있어서 나도 긴장이 풀렸다. 청심환 먹을 거랬는데 진짜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식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너무 빨리 끝나서 좀 놀랐음) 나보다도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친구다 보니, 불필요한 건 다 빼버렸더라. 질질 끄는 주례 같은 것도 없고, 부케 던지기도 생략했다. 폐백도 안 했다.


이제 친/지인들의 사진 찍는 시간. 사실 나는 이 시간을 가장 두려워했다. 솔직한 마음으론 옆 자리에 서고 싶었는데, 나 혼자 밖에 오지 않아서 '내가 옆에 서도 되나..?' 주춤하고 있을 찰나에, 친구의 고등학교 동창들이 그 주위를 죽 둘러쌌다. (한 4명 정도 되는데, 옆2 뒤2로 서가지고 베리어가 쳐졌다) 사실 옆자리에 못 서면 바로 뒤에라도 설 생각이었는데, 그 자리마저 이미 차버렸다. 나는 생각한 것보다 멀찍이 떨어져서 찍게 되었다.


식이 끝나고 남자친구와 같이 카페를 가서 커피 타임을 갖고 있는데, 사진 찍을 당시 내가 자리에서 밀렸을 때 내 표정이 살짝 벙찌고 굳었다는 걸 봤다더라. 나는 잘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눈치 빠른 녀석. 물론 사진 찍을 땐 웃으면서 찍었다.


곧이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마 결혼식의 모든 일이 마무리가 되었던 듯싶다. 끝나고 나서 인사하고 싶었는데 내가 없어서 전화했단다. 부모님을 따라 어른들 결혼식만 다녀왔지, 내 지인의 결혼식은 이번이 처음이라 나는 식사도 다 마치고 나서 인사하는 줄 몰랐다.. 그래서 '일일이 그 많은 사람들 다 인사하려면 정신없고 바쁠 거 같아서, 나중에 또 볼 거니까 그냥 바로 왔다'고 했다. 와줘서 고맙다는 친구의 말에 결혼 축하한다고, 여행도 잘 다녀오고, 예쁘게 잘 살라고 해줬다.


그렇게 내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은 정말 끝이 났다.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사진 찍을 때 내 옆자리는 이 친구일 것이다. 내가 먼저 옆자리에 서 달라고 했을 거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옆자리에 서는 게 뭐 대수라고도 생각한다.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단 것만으로도 우정이 증명된 게 아닌가. 결혼식 주인공이 가장 정신없고 바쁠 텐데,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 하나 챙겨주는 게 뭐 쉬운 일이겠는가. 바로 옆에 서지 않았다고 그 친구가 나를 그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을 사람이 아니란 걸 내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건 정말 다른 일이었다.


원래 다 그런 거지 싶다가도, 내가 생각하는 애정의 크기와 상대방의 크기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 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순리인 것 같다.


그렇다고 "내 마음은 이만큼인데, 너는 아니야? 그럼 저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할 정도로 어리숙하고 멍청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이후로도 나는 평소처럼 이 친구를 대할 것이다. 그리고 연을 끊을 이유도, 그만큼의 용기도 없다. 그저 나 혼자 느끼는 단순 감정일 뿐이다. 그저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기에, 이렇게 불특정다수가 있는 곳에 글을 남기는 정도만 할 수 있는.


이런 마음을 안고 숨기며 살아간다는 게 어른이 되었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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