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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May 22. 2024

그 끝에 닿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Eature 시리즈 열한 번째,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

INTRO

어떤 미디어를 접하든 'To be continued...'에서 'End'로 바뀌면 마음이 참 싱숭생숭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 여기서 끝이 아닐 텐데, 우리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 이후에도 뭔가 많고 다양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겠지만 이후를 만나볼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끝이 있기에 아름다움이, 소중함이 빛을 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똑같은 주인공들의 똑같은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면 분명 지루한 부분도 있을 테니까요. 앞서 이룬 엄청난 성과나 업적이 더 이상 위대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거겠죠?


그래서 웹툰이나 만화를 볼 때 본편이 끝나고 외전이 있으면 환호성을 지릅니다. 그들의 대단했던 이야기도 화려하게 마무리 짓고, 궁금했던 뒷 이야기도 조금 맛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앞서 소개했던 <썩은 핑크의 법칙>이 본편이 끝나고 외전을 10편 가까이 나와서 항상 감격하며 소중하게 보고 있습니다.(TMI)


이 번에는 End가 아닌 And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잔잔한 애니메이션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애니메이션 이름은 <장송의 프리렌>이고요.





STORY 

마왕을 쓰러뜨린 용사 일행의 후일담 판타지
마왕을 쓰러뜨린 용사 일행의 '그 뒤'. 마법사 프리렌은 엘프이며, 다른 3명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녀가 '그 이후'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 느끼는 것과──
남은 자들이 자아내는, 장송과 기도란──
이야기는 '모험의 끝'에서 시작한다.
영웅들의 '삶'을 말해주는 후일담(애프터) 판타지! 


프리렌은 천 년을 훨씬 넘는 수명을 가진 엘프라는 종족이며, 작중에서 이미 오랜 세월을 살기도 했습니다. 영생을 살아가는 프리렌은 어느 날 용사 ‘힘멜’로부터 함께 마왕을 무찌르지 않겠냐는 파티 가입 제안(?)을 받게 되는데요. 마법 이외에는 관심도 없고 인간에겐 더더욱 그러했던 프리렌은 힘멜이라는 인간의 선함과 영향력을 보고 그를 따라갑니다.


힘멜이 구성한 파티에는 도끼를 쓰는 강인한 드워프 전사 ‘아이젠’, 능력은 뛰어나지만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타칭) 타락 성직자 ‘하이터’가 함께 했습니다. 여기에 마법사 프리렌까지 합세하게 되고, 넷은 장장 10년이라는 모험 끝에 마왕을 토벌, 세상에 평화를 가져옵니다.


넷의 모험담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고, 세상 곳곳에는 용사 힘멜을 기리는 동상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프리렌과 아이젠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시간의 흐름을 피해 갈 수 없는 인간이었고, 힘멜은 노환으로 숨을 거둡니다. 마왕 토벌 후 홀로 여행을 떠나던 프리렌은 다행히도 힘멜이 숨을 거두기 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았고, 같은 파티원이었던 하이터도 만나게 됩니다. 하이터도 역시 노화로 곧 죽음을 앞두고 있었고요.


힘멜과 같이 오랜만에 만난 하이터에게는 ‘페른’이라는 작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하이터의 친딸이나 친손주는 아닌 양녀인데요, 페른은 사실 프리렌만큼이나 뛰어난 마법 기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이터는 프리렌에게 자신이 숨을 거두면 페른을 맡아달라 부탁합니다.


이후 하이터 역시 노화로 생을 마감하고, 프리렌은 페른과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용사 일행과의 10년 이후, 혼자가 아닌 다시 한번 일행과 여행을 떠나게 된 프리렌에게는 어떤 일들이 생길까요?



COMMENT

판타지를 장르로 한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용사의 모험일 겁니다.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인공이 용사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클리셰로만 본다면 힘멜이 주인공이어야 하지만, 이 작품은 특이하게 그와 함께한 엘프 마법사 프리렌이 주인공으로 힘멜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불멸자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거창한 스토리가 있는 건 또 아닙니다. 최근 인기 있는 <나 혼자만 레벨업>과 같이 주인공이 엄청난 역경을 딛고 각성하거나, 숭고한 목적을 가지고 싸운다거나, 거대한 흑막이 있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남들에겐 말 못 할 또 다른 비밀이 있다거나 하지도 않고요. 적과 싸우는 장면에서 꽤나 아프게 다치기도 하지만, 프리렌과 페른의 여행은 단순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고 다양한 마법을 배우는 거예요.


오히려 이런 설정이 불멸자의 삶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 영생을 사는 자들은 하루하루가 비슷할 것이고, 인간에게 있어 엄청나고 특별한 사건은 이미 많이 겪어봤을 테니 큰 감흥도 없을 거고요. 인간의 모험은 젊은 시절 큰 마음먹고 행해야 하는 도전이지만, 엘프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인간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단 것 역시 누구보다 잘 알 테니 그들과의 관계를 크게 느끼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불멸자와 필멸자의 운명은 사실상 정해진 거나 다름없죠. 불멸자는 삶의 끝을 경험할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그 끝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은연중에, 간접적으로 그 끝을 많이 만나봤으니까요.


하지만 힘멜의 죽음을 목도한 프리렌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 한 감정이 느낍니다. 인간의 죽음을 바라본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도 말이죠. 평소 인간에게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10년을 함께한 힘멜을 더 이상 볼 수 없단 사실은 참으로 이상하게도 프리렌에게 '후회'와 '슬픔'을 가져다주었어요. 10년이라는 세월은 프리렌에게 있어 사람이 단순히 킬링타임용 영화를 본 것과 같은 시간이겠지만, 생각보다 그 영향력은 거대했습니다. 다시는 볼 수 없기에,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이해했으면- 하고 말이에요.


영생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잠깐이 아니라, 평생을 간직하게 될 기억으로요.


살아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알아주고 기억해 주는 것이다.


이후 프리렌은 페른과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아이젠의 제자였던 슈타르크도 함께 동행하고, 힘멜이 용사로서 행했던-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등의-일을 자처합니다. 그리고 그때 힘멜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조금씩 깨닫습니다. 떠나간 자를 그저 잊어버리지 않고 계속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힘멜로부터 알아갈 수 없는 필멸자에 대한 이해는 페른을 통해서 알아갑니다. 꼬꼬마 때부터 봐왔는데 어느새 사춘기에 접어드는 10대가 되었고, 자신보다 키도 훌쩍 커버린 동료는 시간의 흐름을 짐작케 해 줍니다. 반면 프리렌은 그대로고요. 분명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는데 누구에게는 시간이 흐르고 누구에게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봐온 페른은 그렇게 힘멜만큼이나 소중한 사람이 됩니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또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동반자로요. 그렇게 프리렌은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영생을 살건 살지 못하건 상관없이, 그 끝에 도달할 때까지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결코 단순하고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불멸자와 필멸자 사이엔, 끝에는 반드시 아픔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요.


하지만 여행이 계속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눈물의 이별 같은 건 우리한테 어울리지 않아.
그러면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러울 테니까.


한 가지 빼놓을 뻔했는데요, 이 이야기엔 단순히 삶에 대한 진중한 이야기 말고도 눈여겨볼 게 있습니다. 프리렌과 동행하는 페른과 슈타르크의 사이인데요. 또래 10대(추정) 남녀가 매일을 붙어 다니는데, 와중에 둘 다 모태 솔로(..)라서 꽁냥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그저 귀엽고 귀여울 따름입니다. ??? : 이제 그냥 사귀라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둘 사이가 과연 어떻게 변화될지도 함께 보면 이 애니메이션을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OUTRO

저는 제 인생에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하는 만화책만 구입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장송의 프리렌 단행본을 사고 있습니다. 이 작품도 제 인생에 한 획을 그었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류의 이야기를 보는 게 처음이기도 했고, 애니메이션 스토리가 너무 강렬하게 와닿았거든요.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의 괴리감이 조금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렇게라도 소장하는 것에 의미를 둡니다.


우리는 어디선가 '끝이 있기에 지금이 소중하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많이 들었을 겁니다. 인생이 참 역설적입니다. 그렇다면 끝이 없는 사람에게 지금은 소중하지 않은 걸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장송의 프리렌> 작품에서 보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장송의 프리렌 2nd OP - Sunny (by. Yorush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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