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보기 한참 전부터 예고했었다. 시험볼때 밥을 먹으면, 속이 불편해서 힘들단다. 그래서 이번 수능시험 때는 차라리 점심을 굶겠다고. 그런 아들이 걱정됐었다. 수능일이 다가오자 나름 본인도 그게 많이 신경쓰였나 보다. 학교에서 모의고사 볼때도 자기는 밥 안먹어도 종일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서 속 불편한 것 신경쓰여서 아예 안먹겠다는데, 그러라고 하기도,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고민 좀 해보자고 해놓고, 이런 저런 궁리를 했다.
아침마다 흰쌀밥에,
멀뚱한 시레기 된장국을 내밀면서,
김치 콩나물국에 계란 한알 뛰워 건내면서,
얇게 썬 가을무에 계란물 적혀 넣은 북어국을 떠주면서,
말간 소고기 무국을 건내면서,
칼칼한 육계장을 국물 위주로 담아주면서,
소고기 미역국에 불린 쌀을 넣어 뭉근하게 끓인 죽을 내밀면서,
된장 살짝 풀고 돼지고기 목살 다져넣어 칼칼하게 끓인 김치죽을 건네면서,
소고기 다져넣고, 각종야채를 듬뿍 넣어 보드라운 쇠고기죽을 한대접 대령하면서,
밥이 먹기 힘들면, 후루룩 후루룩 술술 넘어가는 죽이라도 먹는게 좋지 않겠냐고 조용히 의견을 물었다. 아무래도 빈속이면, 속은 편할지언정 머리가 안돌아가 제 실력 발휘하기 어려울 거란 조언을 했다.
그러면 소고기야채죽을 조금 싸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제 저녁은 야채를 넣고, 부드럽게 소고기야채죽을 끓여 저녁으로 건냈다.
굵고 길게 채썬 무생채를 곁들이면, 소화도 잘되니까 같이 먹어보라고.
그렇게 어제 저녁 죽 한그릇 다비우고, 내일도 점심을 이렇게 해달라고 해서 우리 아들의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심 도시락이 최종 확정 됐다.ㅎㅎ
이른 아침!
아들이 등교를 준비하는 사이, 나는 구수한 쇠고기야채죽을 맛나게 준비했다.
한 그릇은 아들을 위해 보온도시락 통에 담고,
한 그릇은 나를 위해 또다른 보온도시락통에 넣어 준비했다.
"아들아! 엄마도 오늘은 너처럼 보온통에 죽을 넣어 도시락 싸 가야 겠다.
너랑 같이 죽 먹으면서 너의 행운을 빌어야 겠어!
같은 음식을 같은 시간에 나누어 먹는 거지. 공간은 다르지만! 어때?ㅋㅋ"
"엄마는 점심 시간이 언젠데요?"
"한시에서 두시지!"
"엄마! 저는 그 시간에 점심 다먹고, 영어듣기 풀고 있을 거예요. 12시 10분부터 점심시간이예요!"
"아? 그런가? 암튼 엄마가 밥 먹으면서도 너를 위해 응원한다고! 알았지? 긴장하지말고 찬찬하게 잘 풀어. 찍어도 다 맞으껴! 잘 찍어. 알았지?"ㅋㅋ
말많은 엄마는 오늘도 말만 많이 했다.
아들은 부드러운 소고기야채죽을 한그릇 다 비우고, 김치는 안 가져가겠다길래.
그러라 했다. 맘속엔 이걸 같이 먹어야 속도 더 편하고, 깔끔하니, 맛도 더 좋을텐데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