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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Nov 15. 2024

길 위에서 낙엽 대신

핸드폰을 주워 올리다니....ㅎㅎ

가로수들이 화려하게 물들었다. 출퇴근길 그 길을 걷는 순간, 가을과 손 마주 잡고 동행하는 기분이다.

하루가 다르게 낙엽이 되어 바닥에 쌓이는 잎사귀들이 늘어난다.

훅~~ 하고 강풍이라도 불면, 순간 가로수길에 단풍비가 내린다.


퇴근길! 보도 위에 떨어진 낙엽을 주워 올리는 대신, 가죽옷 단단히 입은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보도 블록과 두어 발자국 떨어진 차도 위에 노란 은행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아마도 차에서 내리던 주인의 옷자락에서 후루룩 떨어져 내린 모양이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시간대였다면, 혹 차바퀴에 참사를 당하고도 남았음직한 위치다.


'어라? 누가 여기다 이렇게 떨구고 갔을까?'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잃어버린 주인이 혹시나 전화를 해올까 싶어 한참을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한데 한참이 지나도 이 핸드폰이 울리질 않는다. 주인장은 자기 핸드폰을 잃어버린지도 모르나 보다. 나도 참 난감해진다.  핸드폰 속에 혹시 주인과 연락이 될만한 단서가 있나 살핀다.

달랑 식당 명함 세장뿐!


모른척하고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갈 수도 없는 법.

나 역시 오늘 수능시험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위해 맘이 바쁜 고3 엄마다.


일단 112 긴급번호를 눌렀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우리 지역 근처 담당 경찰서로 연결해 주었다. 나보고 가까운 지구대로 가져다줄 수 없냐고 묻는다. 나의 바쁜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까운 지구대까지는 걸어서 20여분 거리라 나도 그렇게까지 할 여력이 안된다고 하자, 그럼 일단 집으로 가지고 가 계시면 후에 우리 집으로 이 폰을 가지러 오시겠단다.


수능시험일이라 근무인력이 그쪽으로 배치가 되어 출동할 여력이 없다고 하셨다.

통화를 마치고 나도 바삐 집으로 향하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난데없이 빵집이름을 댄다. 앵??

"파리바게트죠?"

"아니요! 제가 지금 도로 위에 떨어져 있던 이 핸드폰을 주웠는데요. 여기가 어디냐면요....."


이 아주머니, 이제야 자기가 빵을 샀던 빵집에 자기 핸드폰을 놓고 온 줄 알고 전화를 하신 거다. 지금 본인이 있는 위치를 얘기하며, 나보고 좀 와 줄 수 없냐고?? 아마 내가 차를 갖고 이동 중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떻게 된 사정인지 내가 핸드폰을 주은 곳과  그 아주머니가 계시는 곳의 거리가 고개를 갸웃하게 멀었다. 사정 이야기 하고, 그쪽에서 걸어서 오시면 나도 찬찬히 걸어내려가면 근처 어디서 만나게 될 것 같아 그분의 핸드폰으로 통화하며,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이 이 핸드폰 주인인가 싶은 분이 가뿐 숨을 몰아쉬며 부지런히 걸어오고 있었다.

나를 보자 민망한 듯, 미안한 듯 변명을 늘어놓으시며 웃는다. 빵가게 사장님이 받으신 줄 알고, 그랬다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다. 나 역시 이 핸드폰 주인 찾아주느라 귀갓길이 30분 이상 지체된 것이 못마땅 하긴 했다.

이렇게 연락이 돼서 찾게 된 것만도 다행일 것 같은데, 자기 있는 곳으로 나보고 가지고 오면 안 되겠냐는 황당한 부탁에 어이가 없긴 했었다.


너무 고마워서 사례라도 해야 되는데, 너무 급해 빈손으로 와서 죄송해서 어떡하냐고.... 사례는 무슨? 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을 건네고, 저도 오늘 수능시험 치고 온 아들 저녁 해주러 빨리 가야 한다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주머니 왈 "이렇게 마음이 고우시니, 아들이 틀림없이 오늘 시험 잘 봤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주머니가 참 말씀도 좋으시다.

시험 성적이야 제 노력한 실력대로 나오는 것인 것을.......ㅎㅎ


담당 경찰관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 주인이 전화가 와 만나서 전해드렸다고.

잘됐다시며, 다시 112에 전화를 해서 신고 내용을 취소해 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어제 귀갓길에 있었던, 길에서 핸드폰 주워 주인 찾아주기 미션은 마무리가 되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아마 112에 신고해서 신고 접수 하고, 근처 눈에 확 띄는 가게가 있으면 그곳에 맡겨두고, 경찰관들께 찾아가시라 할 것 같다. 가게 주인이 그 부탁을 들어줄지 미지수이긴 하지만 말이다. ㅎㅎ


어쨌거나 좋은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수능시험이 끝나는 날, 소소한 선행을 실천하고, 어둑어둑한 가로수 길을 힘차게 걸어가는 내 모습이 꽤 괜찮아 보였다.


내 마음이 훈훈해졌다.

출근길 아침~
단풍나무이불 덥은 공원 둔덕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던 날, 길위에서 핸드폰을 주워 든 늘봄

..................그 이야기를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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