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니면 우리 집에서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계절맞이 행사! 바로 옷 정리다. 드레스룸이나 장롱의 수납공간이 넉넉해서 사계절 옷을 구획을 나눠 깔끔하게 펼쳐서 보관 가능하다면야 철철이 내가 하는 이 작업이 따로 필요 없겠지만, 식구수에 비해 수납공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우리 집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철 지난 옷들은 세탁 후 구김이 신경 쓰이는 외투류를 빼고는 대개 차곡차곡 접어서 장롱 깊은 곳에 넣어둔다. 아이들 침대를 모두 수납형으로 한 것도 나름 다 계산된 선택이었다. 그러고도 자리를 못 잡은 옷가지들은 무빙박스에 라벨을 달아 정리해서 창고에 보관하게 된다.
지난봄에 입었던 간절기 옷들을 꺼내서 손질하고, 한여름 잘 입었던 옷들은 세탁 후 정리해서, 꺼낸 옷가지들과 자리를 바꾼다. 사실 이것도 정리하는 엄마 입장에선 큰 일이긴 하다.
새로 꺼낸 옷들은 세탁기에 넣고, 섬유린스를 넉넉히 투입한 다음 헹굼 세탁만 한다. 장롱 안에 오래 넣어두면 희한하게 장롱 냄새가 밴다. 탈수가 끝나면 바로 다림질을 해서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리기만 하면 된다. 다림질을 빠르게, 쉽게 끝내는 나만의 노하우다.
그렇게 여름옷 정리해서 마무리고 하고, 가을옷 꺼내놨는데,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시 겨울옷을 손봐야 할 때가 되었다. 날씨가 갑자기 겨울 문 앞에 성큼 다가간 기분이다. 가을 멋쟁이 흉내낼틈도 없이 겨울 옷가지를 꺼내야 할 것 같다. 급한 대로 아이들 교복 위에 입을 얇은 겨울외투는 하나씩 미리 꺼내두었다.
옷정리를 하다가 예전 생각에 웃음이 났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은 두 살 터울이다. 큰 아이가 일월생이라 학교를 일찍 가는 바람에 학교에선 학년 차이가 하나 더 나긴 했지만 말이다. 어렸을 때 큰 아이는 되도록 제 폼에 잘 맞는 옷을 사 입혔다. 왜냐면 동생이 있기 때문에 잘 입고, 동생에게 물려주면 된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하지만 둘째 녀석 옷을 살 때는 물려줄 동생도 없고, 너무 딱 맞게 사면 몇번 못 입는다는 생각에 항상 한 치수, 두 치수 정도 넉넉하게 사서 입혔다. 그러다 보니, 어떤 옷은 제 몸에 딱 맞게 폼나게 입어보지도 못하고 그 수명이 끝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형의 옷을 물려 입고, 제 옷도 항상 넉넉하게 사주는 엄마의 스타일이 싫었던지, 철들고 나서는 물려 입는 옷은 제 스타일 아니라고 거절했고, 새 옷을 사더라도 제 몸에 딱 맞는, 어쩔 땐 작아 보이는데도 그게 좋다고 고집하곤 했다. 그렇게 고집을 피우고서는 훌쩍 큰 키에 못 입게 된 옷을 건네며, 엄마말 듣을걸 그랬다며 쑥스럽게 웃으며 '엄마가 입을래요?' 하고 제 옷을 건네기도 했다.
둘째 아들도 형 따라 클 거란 기대에, 제법 목돈 주고 산 형들의 외투며, 후드며, 바지며 정리 못하고 있었던 옷가지들이 꽤 있었다. 훌쩍 185가 된 형을 따라 우리 둘째도 180 언저리까지 클 줄 알았다. (택도 없는 헛꿈이 될줄이야) 그래서 형이 작아져서 못 입게 된 옷가지들을 오랫동안 옷장 깊숙이 모셔두고 있었다. 자꾸 들인 돈이 생각나고, 지금 봐도 새 옷 같은 느낌의 옷가지를 보면서 올해는 입을 수 있을 거야, 내년엔 입을 수 있을 거야라고 미련에 정리를 못하고 있었다.
이제 그 미련도 사라졌다.
같은 부모밑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녀석의 사이즈가 이리도 밸런스가 안 맞을 줄이야. ㅎㅎ
이제 둘째도 다 컸다.
큰아들도 10kg 가까이 불어난 체중에 이제는 다시 입어볼일 없을 옷들을 모두 모았다. 여기에 막내딸 옷가지까지 정리해서 모아놓으니정말 산더미 같았다.
제비아빠 옷도 몇 벌 보태고, 내 옷도 정리하고, 거기다 딸아이가 아끼던 인형들도 모두 세탁해 모았다.
미련 없이 버릴 옷은 버리고, 몸에 맞는 주인장 잘 만나면 편하게 입을 수 있겠다 싶은 옷들은 기부하기로 맘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