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8 <우주인 조안>, <하얀 까마귀>가 현대인에게 남긴 메시지
손바닥 하나로 신분을 증명하고, 언제 어디서든 스크린을 띄워 서로를 마주하고, 현실보다 더 생생한 게임이 이루어지는 곳. 한국판 오리지널 SF 앤솔러지 시리즈 <SF8>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이다. 상상으로도 닿지 못했던 세계가 모니터를 통해 펼쳐지고 있는데도,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그들이 처해있는 사회적 환경, 그 안에서 충돌하는 이해관계가 오늘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까.
세 번째 에피소드 <우주인 조안>은 미세먼지로 뒤덮인 세상 속 미세먼지보다 더 무서운 차별의 사회를 그린다. 100살까지 살 수 있는 C와 다르게 30년이 생의 전부인 N에게는 대학도, 회사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생후 6개월 이내에 맞는 항체 주사 하나로 운명이 결정되는 셈이다. 그렇지만 N들은 정해진 수명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으레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굴지도 않는다. 주인공 ‘조안’ 역시 그러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나는 그렇게밖에 못 살겠어. 매일 매 순간 원하는 것을 향해 돌진!
이건 내가 N이라서가 아니라 원래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인 것 같아.”
이런 ‘조안’의 모습은 또 다른 주인공 ‘이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이오’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자신이 C라 믿고 살아왔지만, 과거 병원 측 실수로 인해 항체 주사를 제때 맞지 못했으며 고로 자신에게 80년은커녕 10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안’은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이오’에게 청정복을 벗어던지고 진짜 세상을 즐길 수 있도록 이끈다. 이처럼 <우주인 조안>은 두 부류로 나눠진 사회 안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나’를 찾는 이야기이다. ‘조안’이 ‘이오’의 이름에 목성과 가장 가까운 위성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준 것처럼 그저 자신만의 우주를 하나씩 채워가면 된다는 용기를 건네는 듯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과연 우리는 사회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온전한 ‘나’로서 존재할 기회를 저버린 사람들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 다섯 번째 에피소드 <하얀 까마귀>가 이러한 질문을 아주 날카롭게 던지고 있다.
“근데 나... 진실을 얘기하고 거짓말쟁이 백아영으로 살아가느니
그냥 장준오로 죽어서 동정받을래.”
인기 BJ로 이름을 날리던 ‘JUNO’는 한 동창생의 제보로 인해 과거를 조작했다는 것이 밝혀져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사실 이러한 전개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과거 논란, 학교폭력 등 이미 현실에서도 매일같이 화두에 오르는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응원과 공감으로 가득했던 댓글 창이 단 몇 시간 만에 증오와 비난으로 가득해지는 일을 수없이 목도해왔다. 극 중 ‘JUNO’는 이러한 마녀사냥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하여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한다. ‘아영’이었던 자신이 친구 ‘준오’를 너무나도 좋아하고 동경한 나머지 그 마음이 시기와 질투, 모방으로 일그러져 결국 ‘준오’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JUNO’는 끝까지 자신이 ‘아영’임을 인정하지 않고 ‘준오’로 생을 마감하길 선택한다. 그렇게 ‘아영’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아이가 되고 만다.
‘유행은 한철’이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어울리는 시대가 됐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이에 발맞춰 사람들의 행동 역시 시시각각 변해간다. 잠시라도 허둥대면 편승할 시기를 놓치고 만다. 결국 급하게 뒤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사라지고 주위에는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만이 가득할 뿐이다. 변화는 있지만 변함은 없어야 한다는 말처럼,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고 유유히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소외되거나 미움받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