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 시리즈 <어느 날> 리뷰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김현수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아니, 오히려 친구들과는 달리 노는 시간도 아껴 과제에 쏟아부을 만큼 보기 드물게 성실한 대학생이다. 조별과제 모임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에 몰래 아버지의 택시를 끌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아주 소박한 일탈을 시도하던 중, 운행 중인 택시로 오해하여 승차한 여성 홍국화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처음 만난 여성의 집에서 넙죽 술과 마약을 받아먹으며, 말도 안 되는 나이프 게임을 하다가, 생전 경험도 없던 원나잇을 즐긴 게 죄였을까. 그날 새벽 국화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고 그는 하룻밤 새 처음 만난 여성을 강간한 뒤 칼로 12방이나 찔러 죽인 약쟁이 살인마가 되어있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착한 아들, 바른 청년의 프레임은 핏빛 현장 안에서 ‘순진한 얼굴을 한 악마’로 전락하고 만다.
<어느 날>은 끊임없이 ‘의심’을 부추기는 드라마다. 여성 앞에 멈춰선 택시, 지문이 잔뜩 묻은 칼, 온몸에 가득한 생채기와 혈흔, 그리고 증거인멸의 시도. 시청자들은 1화의 해프닝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다 알고서도 마지막까지 현수에 대한 의심을 놓지 못한다. 마치 보고 싶은 증거들만 남겨두고 다른 것은 지워버린 검사와 형사처럼 말이다. 결국 웃음과 생기를 잃고 삶의 의지마저 저버린 현수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표적 수사의 폭력성과 사법 체계의 모순을 깨닫게 된다. 권위자의 단상에만 마이크를 놓아주고 그들이 쥐고 있는 것에만 조명을 비추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게 된다.
나쁜 변호사, 착한 변호사도 아닌,
그냥 변호사 신중한
답답하리만치 어벙하게 구는 주인공의 옆에서 계속해서 길을 터주는 변호사 신중한의 역할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자 방향성이다. 잡범 전문 삼류 변호사. 극심한 아토피로 늘 어딘가를 벅벅 긁으며 무성의하게 ‘카드 가능 무이자 3개월 현금 30만원’을 외치는 이 인물은 외형만 놓고 보면 사실 너무나도 뻔한 캐릭터다. 샌들을 질질 끌며 나타나 볼멘소리를 내는 그의 첫 등장을 보면 ‘사명감 없는 삼류 변호사가 주인공 등골만 빼먹다 모종의 사건을 겪고선 개과천선하는 이야기겠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곧바로 모든 예상이 빗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돈만 밝히는 엉터리 법조인도, 돈보단 정의를 추구하는 자선사업가도 아닌, 그저 받은 만큼 헌신과 최선을 다하는 변호인이었다. 현수의 부모에게 4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액수를 제시하지만 중한에겐 그 돈이 ‘변호사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의뢰 비용이자 그 값어치에 상응하는 변호를 해내겠다는 의지’일 뿐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 명제를, 지금껏 사법 드라마에 등장했던 수많은 나쁜 변호사와 착한 변호사들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변호사’의 역할에 충실했던 신중한은 그간 사법 드라마에서 다뤄졌던 법조인 캐릭터의 스테레오타입을 깨며 의외의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원인과 결과만 남은 주인공의 흑화
<어느 날>은 극한으로 몰린 현수의 상황을 집요하리만큼 세세히 담아내며 시청자들을 인물에 밀착시킨다.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검사와 형사는 끔찍한 그 날의 상황을 되새김질해 현수 스스로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게 만들고 교도소 내 다른 재소자들은 그에게 무자비한 조롱과 폭력을 일삼는다. 안팎으로 심리적, 신체적 압박을 당하는 현수를 보며 시청자들은 괴로움, 두려움, 혼란의 감정을 함께 겪게 된다. 그러나 이토록 공들여 쌓은 공감의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은 다름 아닌 현수가 폭발하는 지점이다.
시종일관 어눌한 말투와 맹한 표정을 짓던 그가 머리를 자르고, 담배를 물더니 아예 다른 사람이 됐다. 게다가 그 변화는 오로지 교도소 안에서 힘을 과시하는 데만 빛을 발할 뿐, 공판의 흐름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법정에 선 그의 표정은 거만해지고, 자세는 삐딱해지고, 말투는 진정성을 잃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현수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정말 권력자이자 범죄자인 도지태의 손을 잡고 그와 같은 모습을 하는 것뿐이었을까. 무너져가는 부모님과 자신을 위해 싸우는 변호사를 보고도 무기징역이라는 형량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현수의 감정은 전과 달리 선뜻 공감하기 어렵다. 하루 만에 마치 다른 이의 영혼을 삼킨 듯 뒤바뀌어버린 그의 모습이 오히려 안타깝다기보다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다. 변화하는 현수의 캐릭터에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너무나도 뻔한 누아르식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것은 후반부의 최대 단점이자 드라마 전체의 정교함을 무너뜨린 원인이 됐다.
‘또’ 지워진 여성 피해자 캐릭터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자칫 핸들을 잘못 돌리면 위험할 노선을 타고 간다. 김현수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유죄추정의 원칙에 근거한 수사가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지’를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피해자로 그려지는 캐릭터가 바로 ‘여성’이라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진범에 관한 이야기는 잡혔다는 것 외에 단 1분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진범을 잡은 것조차도 인과관계가 확실한 가상의 이야기이기에 가능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중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현실에는 진범은커녕 용의자도 제대로 추리지 못한 채 소리소문없이 죽어가는 여성들이 너무나도 많다. 게다가 범인을 잡아도 그 처벌은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 캐릭터를 여성으로 내세워, 용의자의 말을 두 번 세 번이고 믿고 두드려봐야 한다는 식의 메시지는 별로 달갑지 않다. 누군가는 이런 의견에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지 못한다는 비난을 던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느 날>이 주는 교훈에 ‘여성 피해자’를 위한 메시지는 없다. 베드신, 나체 시신의 장면은 필요할 때마다 계속해서 등장시켰음에도 말이다.
앞서 얘기한 몇몇 지점을 제외하면 <어느 날>은 제법 치밀하고 정교하게 잘 짜인 법정 추리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도소 안과 밖의 조력자가 대비되며 각기 다른 톤을 보여주면서도 결국 하나의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는 점이 흥미롭다. 때로는 주인공의 호흡을 아주 가까이서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방관자처럼 멀리서 지켜보기도 하는 다양한 연출이 극의 몰입도를 최대로 끌어올린다. 물론 5화부터 뒤늦게 본격적인 공판이 시작되면서 마지막 두 화 안에 너무 많은 내용을 욱여넣은 채로 급하게 마무리하느라 후반부의 전달력이 약해진 점은 상당히 아쉬웠다. 그러나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의 캐릭터와 영화 못지않은 연출이 궁금하다면 한 번쯤 찾아봐도 좋을 작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