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상 초유의 대지진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건물이 붕괴하고 도로가 뒤집혀 어느 곳이 땅이고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재난 속에서, 오직 황궁 아파트만이 무너지지 않은 채 굳건히 살아남아 생존자들의 유일한 피난처가 된다.
하지만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인의 침입이 썩 달갑지 않다. 특히 외부인 중 대다수가 평소 황궁 아파트를 무시하기 일쑤였던 드림팰리스 주민이라는 사실은 빠르게 불만의 목소리를 키웠고 결국 회의와 투표 끝에 주민이 아닌 이들을 바깥으로 내보내자는 결론에 이른다.
이후 검증된 주민들만 남은 아파트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유대감과 소속감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방범대를 형성해 아파트 밖에서 식량을 공수해 오는 것은 물론, 아파트 정비 사업을 통해 곳곳을 재난 맞춤형 보금자리로 만들어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일궈 나간다. 그렇게 '한물간 아파트'였던 황궁 아파트는, '아파트는 주민의 것!'을 외치며 아이러니하게도 재난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웹툰 <유쾌한 왕따>와 이어지는 2부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 <유쾌한 이웃>은 1부 <유쾌한 왕따>의 주인공인 중학생 동현과 수현이 무너진 학교를 탈출해 동현이 살던 아파트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이미 그들만의 체계가 확립된 아파트에서, 동현은 주민으로서 적응해 나가지만 수현은 외부인이라는 이유로 갖은 차별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 권력과 차별을 휘두르는 꼭대기에는 아파트의 왕 김 씨가 존재한다.
영화는 원작과 달리 재난 직후 아파트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평범하던 아파트와 주민들이 어떻게 폐쇄적으로 변해가는가에 집중한 셈이다. 이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지금까지의 재난물과 양상을 달리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재난을 예고하는 과학자도, 그것을 무시하는 정치인도 존재하지 않으며 시종일관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재난 상황을 전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초반에는 바깥의 상황을 철저하게 차단하며 오직 아파트 내부의 결속에만 집중한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재난은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재난이 아니다. 아파트의 주민들이 갈 곳 없는 외부인을 몰아내고 또 외부의 것을 강탈해 가며 자신들의 등을 데우고 배를 불리는 모습이야말로 재난과도 같다. 결국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그들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들 스스로 불러온 재난에 처참히 무너지고 만다.
원작과의 또 다른 차이는 주인공인 중학생 동현·수현을 민성·명화 부부로 탈바꿈시켰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캐릭터의 행동 동기가 다소 흐릿해져 아쉬움이 남는다. 웹툰 속 동현과 영화 속 민성 모두 아파트 주민들의 악행에 서서히 물드는 모습을 보인다. 동현은 왕따를 당하고 겉돌던 학교에서와 달리 아파트에서 처음 소속감을 느끼며 권력에 도취되어 간다는 동기가 뒷받침되는 반면, 민성은 재난 직후 제 몸을 다쳐가며 누군가를 구하고자 했던 본성이 휘발되어 가는 과정에 큰 설득력이 부여되지 않는다.
그의 아내인 명화는 본인의 몫을 나눠가며 외부인을 품어주는 것은 물론 변해가는 남편의 모습에 괴로워하는 선한 인물인데, 그 올곧음은 그저 그녀의 타고난 성정일 뿐 다른 사연에 기대지 않는다. 반면 원작의 수현은 학교 폭력 피해자였기 때문에 주민들의 폭력과 차별에 반감이 있다는 설정이 존재한다. 이러한 각색은 인간의 선함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지만, 영화 속 평범했던 인물들이 서서히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상당한 서사와 이유를 부여한 것에 비하면 다소 납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다양한 지점에서 관객들의 공감과 회의를 끌어낸다. 20대부터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는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존재만으로 훌륭한 공감의 매개체가 된다. 전세 사기 피해자인 영탁이 집주인을 죽이고 주민 행세를 하며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가해자가 되는 모습은 어쩐지 비난만을 쏟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불편한 공감이 마음 한편에 피어오른다.
이외에도 일하는 만큼 식량과 생필품을 수급받고, 다수결에 의해 안건을 결정하는 등 주민들이 아파트의 질서를 유지해 나가는 방식이 우리 사회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통념이자 당연하게 여겼던 규칙임에도 과연 진정 옳은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느껴지는 이 불편함과 찝찝함은 그간 재난 영화에서 질리도록 봐온 신파 코드를 대체했다는 점에서 되려 반갑게 느껴진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시작으로 오락성과 장르적 재미에서 한발 더 나아간 한국형 재난영화가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