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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Oct 27. 2023

성공한 작품을 리메이크한다는 것

한국판 <상견니>, 넷플릭스 시리즈 <너의 시간 속으로> 리뷰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9년 현지 방영 이후 8년 만에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고, 대만 최고의 방송상 금종장 시상식에서 4관왕 달성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한 <너의 시간 속으로>가 지난 9월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상견니>는 대만·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작품으로, 드라마의 마지막 화를 영화로 재구성한 극장 특별판이 상영될 만큼 많은 애청자가 있었기에 국내 제작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리메이크는 작품성을 보장받은 원작이 존재하지만, 그만큼 높은 기대치가 따른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너의 시간 속으로>는 <상견니>라는 양날의 검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2013년, 작중 주인공 한준희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남자친구를 잊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생일날 익명으로 배달된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로 노래를 들으며 버스에서 잠이 든 순간, 1998년 고등학생 권민주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죽은 남자친구와 똑같은 얼굴을 한 남학생 한시현을 만나게 된다.     


원작 <상견니>는 과거의 배경과 소품 곳곳에 대만 문화가 잘 녹아있어 소위 ‘대만 감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이를 한국식으로 옮겨오는 것이 <너의 시간 속으로>의 가장 큰 숙제이자 관전 포인트가 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주요 배경이 되는 학교의 모습은 1998년이라기엔 지나치게 현대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길 뿐 아니라, 아무런 전환 효과 없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교차편집 연출은 혼란을 가중시킨다. 타임슬립이라는 서사적 무기와 그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의 시대별 정서가 시각적으로 충분히 표현되었는지엔 의문이 남는다.


우바이 'Last Dance' 앨범 커버 / 서지원 '내 눈물 모아' 앨범 커버


또한, 해당 세계관에서 타임슬립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로 카세트테이프가 등장한다. 원작 <상견니>에선 우바이(Wu Bai)의 ‘Last Dance’을 타임 슬립 테마곡으로 차용하였는데, 이는 해당 앨범의 타이틀 곡이 아닌 Side B에 실린 1번 트랙으로 발매 당시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수록곡이었다. 작중 현대의 인물 황위쉬안이 과거로 가기 전, 본래 몸의 주인이었던 고등학생 천윈루는 학교와 집에서 모두 소외당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결핍이 있었기에 해당 곡은 캐릭터를 대변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 타임슬립 테마곡으로 흘러나오는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는 새로울 것 없이 너무나도 유명하고 익숙한 노래이다. ‘Last Dance’가 <상견니> 열풍에 큰 역할을 했던 만큼 <너의 시간 속으로> 역시 테마곡을 정하는 데 있어 많은 논의가 오고 갔겠지만, 다소 아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초중반까지는 무난하게 원작의 타임라인을 그대로 따라가던 <너의 시간 속으로>가 각색의 힘을 얻기 시작하는 건 후반부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면서부터이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남자친구를 잃은 충격으로 주기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타임슬립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는데, 실은 그 의사가 범인이었다는 사실이 반전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너의 시간 속으로>는 초반부에 정신과 의사를 짧게 등장시켜 시청자들에게 트릭을 걸고, 범인은 제3의 인물로 새롭게 설정하여 반전에 반전을 꾀하였다. 비록 특별출연이지만 악역 연기로 익숙한 배우 박기웅이 의사 역으로 등장한다는 점 역시 트릭에 무게를 더한다.    


  

<너의 시간 속으로>의 특별출연은 적재적소에 매력적으로 활용되는데, 그중 단연 돋보이는 건 과거 구연준의 친구 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로운이다. 원작에서 해당 캐릭터는 동성 친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자신의 마음을 부정당해 자살하기에 이르지만,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는 두 친구가 서로 같은 마음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이는 원작에서도 아주 짧게 등장하는 장면이지만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각색을 통해 더욱 그 서사가 깊어져 원작 팬들의 열띤 반응을 끌어냈다.

 

물론 이러한 사소한 차이들이 전체적인 줄거리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원작 시청자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새로운 재미를 더하고 극의 분위기를 상쇄한다는 점에서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너의 시간 속으로>가 ‘한국판 <상견니>’로서 대만과 다른 한국만의 지역적·문화적 특색을 녹여내는 데 성공했는가 하는 질문에는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몇몇 캐릭터의 변화와 달라진 결말 등 원작과의 차별점을 두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지점이 보인다. 앞서 말했듯 해외에서 성공한 작품을 리메이크한다는 건 기대치라는 리스크와 현지화라는 숙제가 따른다. 일명 ‘상친놈’이라 불리는 원작 팬으로서 상당히 아쉬운 지점들이 많이 보이지만,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탄탄한 타임 루프 세계관의 멜로 드라마로서 이 작품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너의 시간 속으로>가 아쉬웠다면, 혹은 여운이 남는다면, 원작 <상견니>를 적극 추천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원작과 리메이크작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것, 그것이 곧 ‘리메이크’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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