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노란문 :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리뷰
검색 한 번으로 원하는 영화를 찾고, 터치 한 번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재생할 수 있는 시대이다. 어디선가 알음알음 비디오를 구해 몇 번이나 복제됐는지 모를 흐릿한 화면으로 영화를 보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 세대에겐 퍽 생소한 일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이라면 대가 없이 뛰어들어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는 행위는 모든 세대에 존재해 왔다. 우리는 살면서 모두 한 번쯤 무언가의 ‘광’이자 ‘덕후’가 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노란문 :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는 90년대 시네필 역사의 회고록이자, 그 시절 함께 모여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청춘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이 과거를 말하고 있으면서도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유이다.
90년대 초, 영화를 공부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곳곳에 모여 동아리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시네필’이라 불린 첫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그중 하나인 노란문 영화연구소는 현재 세계적인 거장이 된 감독 봉준호가 학생 시절 몸담았던 동아리로, 종종 그의 인터뷰에 등장하며 전설처럼 회고되기도 했다. 이는 <노란문 :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가 기획되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대학생 봉준호’ 혹은 ‘봉준호 영화 인생의 시작’과 같은 주제로 흘러간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편이 시청자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정공법을 택했다. 한 명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고 ‘노란문’이라는 모임 자체를 조명하여 90년대 젊은 시네필들의 영화를 향한 치열한 움직임을 담아냈다. 그 움직임이 이후 2000년대 초 한국 영화 르네상스로 이어졌기에 이는 곧 한국 영화의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노란문 :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는 지난 10월 개최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산시네필상을 수상하였다. 해당 상의 심사위원단이 부산 지역의 영화 관련학과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12명의 멤버들은 각자가 기억하는 ‘노란문’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눈을 반짝인다. 학업이나 취업처럼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목적이 아닌, 그저 즐겁고 재밌기에 열정을 쏟는 그들의 모습엔 천진함이 서려 있다. 동아리도 어느새 하나의 스펙이 된 사회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어쩌면 빼앗긴 모습이다. 씁쓸하지만 지금의 학생들에게 이 다큐멘터리가 깊이 와닿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앞뒤 재지 않고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던 시절이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한 번쯤 이런 무모한 방황을 해보고픈 반항심이 마음을 들썩인다.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되는 90년대가 민주화 운동 이후 찾아온 격동기였듯 지금의 사회 역시 여러 이유로 불안정하고 혼란스럽다. 그 시절 청년들이 노란문을 찾아 두드렸던 것처럼, 지금의 청년들에게도 분명 각자의 '노란문'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작품을 통해 그 노란문을 찾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