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키트 스타트업 3사, 사업모델(BM) 뜯어보기
원래도 비슷한 건 있었다. 즉석밥, 냉동만두, 3분 카레부터 대형마트에서 팔던 매운탕키트, 알탕키트까지. 과거 인스턴트나 레토르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가정간편식(HMR)이나 밀키트 얘기다.
HMR이나 밀키트나 그놈이 그놈 같은데, 사실은 좀 다르다고 한다. 밀키트는 가정간편식(HMR) 중에서도 재료나 소스류 등이 반조리돼있어 추가조리가 필요한 제품들을 말한다. 냉동만두나 햇반, 3분 카레처럼 가열 외에 할 게 없는 일반 HMR과는 조금 다르다.
1인 가구 확대와 함께 HMR 시장은 원래도 커지고 있었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최근에는 HMR뿐 아니라 밀키트까지 폭풍 성장 중이다. 한국식품유통공사(aT)는 2017년 20억원이던 밀키트 시장이 2025년 7250억원으로 300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놀랍게도 이런 메가트렌드 산업의 앞단에 스타트업이 있다. 선두주자는 프레시지다. 명실상부한 업계 1위로 2019년 매출 712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 이후 2020년에는 더 폭풍같이 성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이셰프, 쿠캣도 2019년 각각 매출 110억원, 192억원을 기록하며 뒤를 좇고 있다.
시장 자체가 팽창중이니 다들 열심히 앞만 보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구나 싶은데... 놀랍게도 세 회사의 전략이 다르다. 같은 것은 소비자에게 '온라인, 오프라인마트 등 채널을 통해 밀키트를 판매한다'는 점뿐.
업계 1위, 프레시지의 특징은 확장성이다. 직접 개발한 제품도 있지만 다양한 식당들과 협업해 온갖 음식들을 '밀키트화'한다는 것. 이른바 '콜라보레이션'(업계에서는 RMR·Restaurant Meal Replacement이라고도 하더라)
예를 들어 노포 맛집 '백년가게'들과 협업해 음식을 밀키트로 만드는 방식이다. 예컨대 45년 된 의정부 식당 지동관과 협업해 '깐쇼새우 밀키트'를 만드는 방식이다. 프랜차이즈와도 협업한다. 생어거스틴, 교촌치킨 등과 협업해 '교촌 통순살치킨 밀키트', '푸팟퐁커리 밀키트'를 출시했다.
음식개발은 요리사(식품기업)에 맡기고 자신들은 가장 잘하는 밀키트 가공을 주무기로 세상의 모든 음식을 '밀키트화'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플랫폼' 전략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직접 동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대신 다양한 콘텐츠 제작자들의 동영상을 업로드·스트리밍하는 것처럼, 프레시지는 직접 요리를 개발하는 대신 다양한 요리사들의 요리를 밀키트로 만드는 플랫폼처럼 활약하고 있다. (물론 플랫폼의 오리지널 콘텐츠처럼 프레시지도 자체 개발 식품이 있다.)
레시피 개발 비용을 줄이면서도 제품 라인업을 급속도로 늘려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아직 브랜드 파워가 크지 않은 기업으로서는 상당히 영리해 보인다. 업계 1등은 괜히 하는 게 아닌가보다.
다만 기존 식품업자들과 브랜드·레시피 관련 이윤을 나눠야 하고 콜라보 대상별로 세부가공방식까지 각각 개발해야 해 오히려 비용이 더 클 수도 있다. (요리 문외한이라 잘은 모르지만, 일반요리용 레시피와 밀키트용 레시피는 다르지 않을까?) 제작해서 판매하는 것.
더구나 경쟁업체 방어도 쉽지 않다. 이미 이마트(피코크), 컬리(마켓컬리)도 유사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마트나 컬리가 브랜드나 머니파워로 치고올 경우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시장이 더 커지고 참여자들이 많아졌을 때 프레스티지의 대응전략이 궁금해진다.
2011년 설립된 마이셰프는 프레시지(2016)보다 5년이나 먼저 설립된 밀키트 전문 스타트업이다. 다른 스타트업엔 없는 시장노하우나 데이터만 10년치가 쌓여있다.
식품업계 10년의 짬바에서 나온 전략인지, 마이셰프는 음식의 본질, 맛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 같다. 직접 셰프들을 고용하고 소스나 레시피를 개발하면서 제조 전반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임종억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임 대표는 "밀키트 식재료 비율에 맞춰 내부 셰프들이 황금비율의 소스를 만들고 제공한다"고 말했다.
프레시지가 플랫폼이라면 마이셰프는 콘텐츠 제작자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밀키트 제조업체의 전형이지만 '가장 맛있는 밀키트'를 만들어 압도적인 시장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밀키트가 새로운 시장인 만큼 새로운 맛과 방식으로 시장을 공략할 수 있어서다. 협업으로 발생하는 맛 편차를 줄이고 고유의 맛을 낼 수 있어 브랜드 충성도도 높일 수 있다. 단, 그만큼 맛에 대한 프리미엄급 아이덴티티가 보장돼야만 한다.
마이셰프의 방식은 영업이익률 역시 가장 높을 수 있다. 이윤을 나눠야 할 곳도 없고 매번 새로운 상품 출시 때마다 새로운 가공법을 고민할 필요도 없기 떄문이다.
문제는 이런 전형적 비즈니스모델이 가장 어려운 방식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고유의 맛으로 소비자에게 기억되지 않으면 시장 확장이 쉽지 않다. 특히 밀키트는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개별소비자의 조리 과정이 남아있어 의도한 최적의 맛을 내는 게 더욱 어렵다. 이미 마이셰프는 5년이나 후발주자인 프레시지에 매출규모를 추월당했다.
마이셰프로서는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지금이 도약과 낙오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쿠캣(2016년 설립)은 일반적인 밀키트 업체들과는 다르다. 태생은 SNS 음식콘텐츠 채널이었다. 여기서 사업을 하나 둘 붙였다. 쿠캣마켓을 출범하면서 유통사업에 뛰어들고, 최근부터는 OEM 방식으로 제조까지 하고 있다.
밀키트 제조에 뛰어드는 업체들이 점점 많아지는 데다 기술수준도 평준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제조기술의 보급으로 지방의 식품전문OEM제조업체들은 밀키트 제조에도 뛰어들어 적절한 판매브랜드, 유통채널 등을 찾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유명 맛집이나 노포까지 직접 밀키트를 제조하는 단계다.(직접 RMR제조방식) 언론에는 광주의 갈비전문점 '강강술래', 서울 '역전회관' 등이 소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조를 OEM에 맡기고 소비자를 먼저 모아먼저 모은 것은 영리한 전략으로 보인다. 식품업계에서는 좀 낯설지만 실제 콘텐츠를 통한 소비자 락인을 사업의 가장 첫번째 모델로 삼는 경우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게 패션 커뮤니티에서 유통플랫폼의 사업모델을 붙인 무신사다. 오늘의집, 스타일쉐어도 동일한 성공 방정식을 쓰고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콘텐츠의 중립성이다. 콘텐츠가 자사 제품 광고의 성격을 띠면서 소비자가 이탈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일대일 비교는 어렵지만 유튜버들이 콘텐츠에 광고기능을 덧붙이면서 구독자를 잃은 것도 같은 논리로 볼 수 있다.
또 콘텐츠를 기반으로 소비자를 모은 사업자가 유통을 넘어 제조까지 가게되면 이는 더욱 위태로워질 수 있다. 제품의 품질로 쌓인 브랜드 로열티가 아닌만큼 제품에 대한 충성도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어서다. 콘텐츠는 콘텐츠대로 향유하면서 정작 제품은 다른 데서 구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단순 UX의 불편, 가격의 비합리성을 떠나 품질(맛)이 없다면 소비자들의 이탈은 불 보듯 뻔하다. 차라리 유통에만 머무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무신사가 10여년 넘게 PB제품 제작에 손을 대지 않았던 점도 이같은 이유일 것이다. 오늘의집 역시 무서운 성장속도에도 아직까지는 유통에만 집중하고 있다. 콘텐츠 기반사업자의 사업확장은 쉬워보이면서도 그만큼 까다롭다. 콘텐츠 기반으로 소비자를 쌓아올린 쿠캣은 제2의 무신사 신화를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