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나무 숲

내 마음 들여다보는 중

by 힐링아지매



안녕하세요.

웃는 얼굴이 아름다운

힐링아지매입니다.





아버지의 대나무 숲



아버지는 속을 털어 내고 싶어지면 가끔씩 나를 찾아 오시곤 하셨다. 그저 '딸내미가 보고 싶어서'라고 하시지만 뭔가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함께 살고 있는 동생 내외의 사이에서나 노인 일자리를 함께 하시는 분들과의 관계에서나 아니면 마음에 드는 여자분이 생겼거나, 주로 함께 사는 동생에게 서운하거나 여자 문제일 때가 많다.


동생은 군 복무 시간을 제외하고는 태어나서 쭉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올케 역시도 시집와서 지금까지 시모를 모시고 살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0년 넘게 홀 시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사건이 있겠는가 그럴 때마다 찾아오시곤 하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신 아버지는 수시로 여자 얘기를 하신다. 아버지는 거의 도끼남이지만 의외로 고백을 받을 때도 있고 때로는 썸을 타는 여자분이 생기면 그 이야기를 하러 오시기도 한다.


두 가지 스토리 모두 아무나 붙잡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보니 아들 며늘 흉을 보려고 딸을 찾아오고 동병상련으로 혼자 계신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여겨서 썸녀에 대한 이야기도 하러 오셔서 다 쏟아 내고 가신다.


속의 말을 마음에 담아 두시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잔소리처럼 하시지는 않고 최대한 담아 둘 수 있을 때까지 담아 두었다가 어느 순간 술 한 잔의 힘을 빌어 폭발을 하곤 하는데 그 후유증은 오래가는 편이라 폭발 직전에 찾아오시거나 마음먹고 폭발을 했음에도 아들에게 항복을 받아 내지 못할 때에도 찾아 오시곤 하셨다.

기꺼이 아버지의 대나무 숲이 되어 드린다.

그런데...






대나무 숲이 하나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떠나신 지 3년이 되어간다. 그렇게 치열하게 애증 관계였던 동생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어하고 아버지의 사랑만 받고 서로를 이해했던 나는 새록새록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가 보고 싶다.


그래서 다들 정이 무섭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라고 하나 보다.


두 분 다 안 계시지만 부모님의 그림자가 있는 거기는 여전히 내겐 친정이다. 동생이랑 아버지와의 추억을 얘기하다 보니 아버지는 당신 자식들을 너무 잘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대나무 숲은 하나가 아니었다.

내게 와서는 동생 흉을 보고 동생에게 가서는 내 흉을 보면서 속을 털어놓으며 사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뒤 끝없는 사람'이었다.

뒤끝이 없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두 개의 대나무 숲 덕분이었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본다.

아버지의 하소연을 듣고는 동생 편에서 말씀을 드릴라치면 '그러면 다 내가 잘못한 거네!'

하시며 더 역정을 내셨고 결국 아버지는 내게 와서 동생 흉을 봤다는 얘기는 속 빼고 내가 서운하게 했던 이야기 만으로 동생에게 다 털어내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었다.


술 한 잔의 힘을 이용해서 하시거나 그냥 얘기를 꺼내시거나 항상 시작은 부드럽게 상대의 마음을 떠 보듯이 에둘러서 말씀하시다가 당신이 원하는 답이 없거나 생각이 다르면 결국 폭발을 하시곤 했던 아버지.


우리가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의 관성 없는 그런 동들이 비단 우리에게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같은 패턴으로 소통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곳에서든지 당신이 주인공이어야 했고 상대가 당신 뜻대로 따라오지 않으면 어떠한 이유를 대서라도 그 인연은 버리셨으니 항상 외로웠던 당신에게는 가족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정적이었지만 어른스럽지 못했던 우리 아버지, 사랑하지만 어른으로써 일관되지 않은 처신들로 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다.




아버지를 닮아 가는 것 같다




나의 행동에서 아버지 보인다.


'이해한다, 그럴 수 있지, 그게 맞지' 하면서도 서운해하고 나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에 속이 부글 거리고 서운하다.


아이들이 나를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서운해도 답답해도 그저 이해해야 한다고 그렇게 참았었나 보다.


분명히 이유가 있는데 꼭 집어서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일, 개구리를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집어 넣으면 바로 튀어나오지만 찬물에 넣고서 서서히 열을 가하면 자신이 익어가는 줄 모르고 죽는다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오랜 시간 아주 조금씩 아프면서 곪아왔던 것 같다.


내게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평소에 'here & now' 'carpe diem'이 내 삶의 펩톡이고 '웃음은 셀프'라고 얼마나 떠들었는데 내가 마음의 감기가 든 것을 알게 되면서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우울증인가 봐




말을 하기도 싫고 눈을 마주치는 것도 싫고 종종 멍해지고 울컥울컥 목구멍이 아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분명히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뭐라고 꼭 집어서 이것이라고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럴 때 아버지처럼 대나무숲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내겐 딸도 없고 내 얘기를 편하게 털어놓을 막역한 친구도 없으니 곪은 속은 얼굴로 행동으로 눈빛으로 다 나타났다.


아들이 먼저 알아주기를

며늘이 먼저 알아주기를

어리광을 부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주치지 않는 눈, 실내에서도 모자를 눌러쓰고는 왜 그러냐고 물어봐 달라고... 시위하듯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4일쯤 되니


"어디 아프세요"


"아니"


"아닌 거 같은데 왜 그러세요?"


"내가 뭐'


"눈도 안 마주치고 말씀도 없으시고..."


"........."


"우울증인 거 같아"


"병원 가보세요'




나의 대나무 숲



외상이 있거나 감기처럼 질병으로 아픈 것은 아니고 우울증 같다니까

'병원 가보세요'.

그게 끝이다.


병원을 같이 가자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왜 우울한 지에 대한 관심도 없고

내 얘기를 들어 볼 생각은 더더욱 없는 것 같고


술 한 잔에 기대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고

딱히 뭐가 서운하다고 할 만한 이슈도 없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먼저 주절 주절 할 수도 없지만


난 분명히 아프고...

마음의 감기가 들었고...

혼자서 훌쩍거리고 자꾸 땅 속으로 꺼지는 마음을 어찌할 바를 몰라 선택한 것이 글쓰기다.


나의 대나무 숲이 되어 준 브런치


글을 쓰면서 위로를 받고

마음의 감기가 치유되고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서운함의 색깔이 연해지고

왠지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대나무 숲을 찾을 일이 없으면 제일 좋겠지만 삶이 어찌 내 뜻대로만 되던가?

앞으로도 계속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나의 대나무 숲으로

노후의 동반자로

친구처럼 그렇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