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주일보 May 06. 2024

아름다움(爲美)을 위하여

이영운 시인/수필가



“선생님 이 책 한번 읽어 보실래요? 읽은 다음엔 필요한 다른 분에게 주시면 될 것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잘 음미하며 읽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봉사 활동을 하는 선생님이 책 한 권을 내민다. 책 제목이 ‘용서를 위하여’(한수산 지음)라는 장편 소설이다. 부제로 ‘그리운 이름, 김수환 추기경’이라고 붙어 있다. 내가 평소에 종교 관련 서적을 읽는 것을 보고 그녀가 권한 것 같다. 한수산은 우리 시대의 영웅이 아니었던가? 1977년 ‘부초’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1991년 ‘타인의 얼굴’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유려한 문체로 빛나는 소설 미학을 구축했었다.



이 소설은 픽션이 아니라 순수 다큐에 속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자신의 중앙일보 연재물 ‘욕망의 거리’에 따른 소위 한수산 필화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 작가는 제주에 정착한다. 채 돌이 되지 않은 딸과 내려오면서 베개 두 개, 숟가락 두 개, 밥공기 두 개를 갖고 온다. 걷지도 못하던 아이가 아파트 계단을 혼자 걸을 수 있을 때까지 함께 지낸다. 글쓰기에 전념하고자 서귀포시 위미(爲美) 중산간 형제목장 안의 조그만 집을 구한다. 전기도 없어 등피에 불을 켜고 석유버너로 밥을 지었다. 사나흘씩 이 곳에서 지내다 제주시 아파트로 가곤 했다. 밤에 글쓰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창밖을 보면 커다란 눈망울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소떼들이 빛을 찾아서 와서는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의 점퍼 또 한 사람의 넥타이가 찾아와서 한 작가를 서울로 연행했다. 그리고 전기고문, 물고문, 수도(手刀) 고문으로 몸도 정신도 만신창이 되었다. 풀려나서 다시 제주 이호해수욕장으로 내려갔다. 밤두시에 이호에서 걸어서 제주시 중앙성당으로 갔다. “계세요? 신부님! 성당문 좀 열어주세요.” 대여섯번 소리지르자 불이 켜지고 창 안에서 신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누구세요?” “기도하러 왔어요. 성당문 좀 열어주세요.” “기도하려면 낮에 와서 해요.” 불이 꺼졌다. 그는 중얼거렸다. ‘하느님도 밤에는 잠을 잔다.’



어쨌든 그는 삼수 끝에 겨우 세례를 받는다. 그 것도 백두산에서 ‘성나자로 마을’ 나환자의 아버지 이경재 신부로부터다. 백두산 천지에서 코발트 빛 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이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례를 받으며 물이 내 이마를 흘러내릴 때 아마가 불타는 것 같았다.’



이 필화사건으로 의욕을 잃은 그는 수년간 일본에 체류한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이 신학 공부를 했던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 소피아 대학)을 자주 찾아 추기경님의 자취를 찾는다. 나도 십여년 전 이 대학의 소피아(SOPHIA : 그리스어로 신의 지혜를 뜻함) 성당을 몇 차례 찾았었다. 동경 지하철 역 근처로 기억한다. 거대한 성당에 퍼지는 성가가 너무도 장엄하여 마치 천상적 멜로디를 듣는 듯했다. 또 이 성당은 전임 제주교구장님이 공부했던 곳이기도 해서 내게는 의미가 컸었다. 그런데 추기경님도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수품했었다. 그러고 내게도 이 분들과 어떤 가느다란 인연이 있어 보였다.



추기경님과 악수를 하고 3일간 손을 씻지 않았다는 한수산 작가의 감동이 이 좋은 책 ‘용서를 위하여’를 쓰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머물며 집필했던 곳은 서귀포시 위미였다. 내가 한때 중학교 교장으로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다. 위미(爲美)는 그 뜻풀이가 ‘아름다움을 위하여’이다. 그런데 그의 책 이름은 ‘용서를 위하여’였다. 아마도 작가는 용서를 통해 아름다움이 완성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위미사람들처럼!

작가의 이전글 고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