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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Jul 15. 2024

저 작은 제비의 삶의 거리

박상섭 편집위원



‘오늘 아침 먼동이 틀 때 강남의 더운 나라로 제비가 울며불며 떠났습니다./잘 가라는 듯이 살살 부는 새벽의 바람이 불 때에 떠났습니다./ 어미를 이별하고 떠난 고향의 하늘을 바라보던 제비이지요./ 길가에서 떠도는 몸이길래 살살 부는 새벽의 바람이 부는데도 떠났습니다.’




시인 김소월의 ‘제비’다. 한반도의 어느 곳에서 태어난 제비다.




겨울이 무서운 제비는 가을이 가까우면 한반도를 떠날 수밖에 없다. 한반도 태생 이 제비는 안타깝게도 어미까지 잃은 모양이다.




그래도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강남으로 떠나야 한다. 그래서 울며불며 떠난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의 삶도 참 고단하다.




▲제비의 최대 속력은 시간당 250km에 이른다고 한다. 새 중에서도 매우 빠른 편에 속한다.




우정사업본부는 제비가 빠르다는 것을 감안해 오래전에 심벌마크를 제비로 선정한 바 있다. 우편물을 빠르게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바둑의 거목 조훈현 9단의 별명이 ‘제비’다. 조 9단의 기풍이 날쌔고 빠르기 때문이다.




물론 유흥가에서 돈 많은 여성에게 접근해 성적으로 유혹을 하고 돈을 갈취하는 이를 제비족이라고 한다.




흥부에게 큰 복을 가져다준 착한 제비로서는 억울할 만하다.




▲제주에서 태어난 제비는 어디로 갔다가 또 제주로 오는 걸까.




오현고·표선고·효돈중·북촌초가 참여한 제비 생태 탐구 프로젝트 연구 결과가 놀랍다. 4개교 학생들은 2023년 6월 제주시 화북동과 서귀포시 효돈동 일대에서 번식 중인 제비 10마리를 잡아 위치 추적 기록 장치를 부착했다.




학생들은 최근 번식지로 돌아온 제비에서 위치 추적 장치를 회수해 이동 경로를 분석했다.




제비들은 지난해 8월 18일에서 19일 사이 제주를 떠나 일본 오키나와(8월 20~26일)와 말레이시아(9월 6~8일)를 거쳐 9월 12일 필리핀 루손섬에 도착했다. ‘강남 갔던 제비’에서 강남이 바로 루손섬이었던 것이다.




이 제비는 루손섬에서 겨울을 보낸 후 올해 2월 28일 이곳을 출발해 대만과 중국을 거쳐 3월 초 제주에 왔다. 이 기간 제비의 왕복 이동 거리는 무려 9200km에 달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저 작은 제비의 삶의 거리다. 




제비는 9200km를 날으면서 얼마나 많은 자연의 비밀을 눈에 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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